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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13. 2022

영화 <페노메논> : 생명의 에너지와 사랑에 대한 현상

  

     

  조지(존 트라볼타)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 하몬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는 청년입니다. 이웃에게 언제나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고, 싱글맘인 레이스(카이라 세드윅)에게는 연정을 품고 있지만 늘 까이고 있죠. 마을의 클럽에서 조지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 파티를 열던 중, 정체불명의 섬광을 맞은 뒤 그에게 초인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루에 책 몇 권씩을 독파하고, 단 몇 시간 만에 스페인어를 배워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사물을 움직여 보는 이를 놀라게 하고, 마을에서 실종된 아이를 텔레파시로 찾아내는 신통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저음파 주파수를 감지하여 지진을 미리 예측하기도 하죠. 그 같은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자 그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단정해버리고 두려움을 느끼며, 경계까지 하게 되죠. 그러던 중 친구인 네이트(포레스트 휘태커)와 함께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하던 중 공군기지에서 사용하는 군사 암호를 해독하고, 심심풀이 두뇌 플레이 놀이로 몇 개의 신호를 보내자 암호 시스템의 대혼란이 야기됩니다. 그로 인해 미정보국에 소환돼 조사까지 받게 되죠. 버클리대 지질학과 교수는 조지를 찾아와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낮은 주파수를 느끼는 조지에게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조지를 외계인처럼 여기게 되고, 정보기관에서는 강제로 조지를 감금하고 탐구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세계적인 뇌 전문가가 조지의 뇌를 살펴본 결과 외계의 섬광에 노출돼서가 아니라 종양 때문이란 게 밝혀집니다. 정체불명의 섬광은 뇌에서 일어난 일종의 착시현상이었습니다. 조지의 종양은 뇌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증폭시켜 초인간적인 능력이 나타났던 겁니다. 정부에서는 조지의 뇌구조를 해부해 종양이 뇌를 활성화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구명하려고 하죠. 조지의 생명을 살리려는 게 아니라 의학 발전의 명분과 과학적 호기심의 해소가 전부였던 거죠. 온 세상이 조지를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건 마을의 의사인 닥(로버트 듀발)과 친구인 네이트, 그리고 조지를 내치던 레이스뿐입니다. 결국 조지는 그를 감시하던 정보 요원의 눈을 속이고 병원에서 탈출해 레이스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페노메논>은 이런 영화입니다.

  첫째, 피상적으로 보면 SF영화처럼 보이지만 그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달을 보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스토리의 핵심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와 관계를 통한 인간의 존재의미를 성찰하는 겁니다. 모든 생명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건 에너지이며, 인간을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건 관계와 사랑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쿨러닝>,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내셔널 트레져>, <라스트베가스>를 연출한 존 터틀타웁 감독은 <페노메논>이 우주의 생명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을 동일한 장면으로 제시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타이틀이 뜨면서 보이는 나뭇잎, 별, 일출, 마을, 풍향계, 소, 망가진 차의 깨진 헤드라이트에 낳은 새알, 페타이어 안에 있는 길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우주를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입니다. 그 우주 안에서 생명과 사랑의 서사가 펼쳐지는 겁니다.


  둘째, 조지가 레이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인간적입니다. 레이스가 팔려고 만든 의자를 카센터 앞에 전시하게 해 주고, 그걸 다 자신이 사줍니다. 조지의 집에는 온통 레이스가 만든 의자로 가득 차 있죠. 나중에 레이스가 그 같은 사실을 알고 화를 냈을 때,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죠. 그에 대해 레이스는 “난 솔직한 게 좋아요.”라고 응답하죠. 사실은 레이스도 조지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남편이 죽고 난 뒤 일종에 트라우마 같은 게 있어 사람을 경계했죠. 조지를 좋아하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레이스는 조지가 싫은 이유를 솔직하게 말합니다. “끌리니까. 언제 떠날까? 우리를 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사랑의 부담으로 느껴졌던 거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진 결심>에서 ‘헤어진 결심’이 서래(탕웨이)가 해준(박해일)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것에 대한 비장한 결심이었던 것처럼 고귀한 사랑은 역설로 그 깊이를 더하기도 합니다.  



  셋째, 타이틀이 뜰 때의 푸른 나뭇잎, 종말에 다가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조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푸른 잎사귀를 의미 있게 쳐다보는 장면, 조지가 숨을 거둔 뒤에 레이스가 아이들과 함께 조지가 바라보던 나뭇가지의 푸른 잎을 바라보는 장면은 다분히 동양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순환 속에서 영원히 무한 반복한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바람, 하늘, 나무, 인간, 생명, 사랑은 우주를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걸 깨닫게 되면 죽음의 통속적인 슬픔은 극복되고, 어디서든지 망자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점에서 조지가 살아있을 때 자신의 비법으로 만든 유기비료로 네이트가 농사를 지어 풍성하게 수확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넷째, 존 트라볼타의 순수한 표정 연기가 참 좋습니다. 레이스 역을 맡은 카이라 세드윅의 표정도 집중하게 만듭니다. <지랄발광 17세>에서는 주인공의 철없는 엄마 역을 맡았죠. 배우 케빈 베이컨의 부인이기도 하죠. 로버트 듀발의 넉넉하고 깊이 있는 연기는 스토리의 신뢰감을 더 높여줍니다.


  다섯째,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조지 : 당신의 눈동자엔 천국이 있습니다.      


  닥 : 자넨 가능성이 있어. 세상에 기여할 바가 있는 거야.          자네 포경수술하던 날 그걸 깨달았지.      


  닥 : 천국엔 금연석이 없어.      


  조지 :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해 주겠소?

  레이스 : (고개를 저으며 )아뇨,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어요.      


  여섯째, OST로 귀를 즐겁게 합니다. 조지가 레이스의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시골길을 달릴 때,  Sheryl Crow의 ‘Everyday Is A Winding Road’는 신나게 들립니다. 네이트가 수확한 옥수수를 가지고 조지의 사망 일주기를 추념하는 모임에서는 Eric Clapton의 ‘Change The World’가 마음속까지 울려 퍼지죠. OST도 스토리의 의미에 조응하는 노래를 택했습니다. 공을 들인 거라고 봐야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에 개봉했는데 지금 보아도 여전히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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