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냇옷

Surrender, 내려놓음

by 참읽기
Surrender=sur(위에 넘겨서) + render(내어주다) 싸움에서 져서 무기를 머리 위로 넘겨주는 것을 말해.

상대방에게 완전히 넘겨주다 "항복, " "내려놓음"이 된 거야.


네 옷을 짓겠다고 나선 건 바느질에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야. 바느질은 전혀 취미일 수 없어. 중학 시절 가정시간에 바느질을 배웠어. 복주머니도, 주름치마도, 블라우스도 만들었지. 세 개 다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어.


내게 바느질은 단지 가정 실기점수와 동일한 기술이었어.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자로 재어가면서 땀을 떴고, 조금이라도 틀리면 뜯어내고 다시 하면서 며칠 밤을 새웠지. 내 완성품은 기술은 나무랄 데가 없어도 예술성이 없었어. 잘 만들었는데 아름답지 않았지.


너의 옷을 지어야겠다는 것은 성적 판단이나 감정적 선호가 아니라 본능이었어. 나를 집으로 삼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공급받는 네가 반드시 나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 덜컥 겁이 났거든. 래서 생각했어. 옷을 지어야겠다. 내 손때가 묻고 내 숨결이 스미고 내 눈빛이 구석구석 닿았던 옷이라면 너에게 안식이 될까. 마가 조금이라도 깃든 옷을 입고 나서면 새로 만날 세상이 너무 낯설지는 않겠지. 아니, 너무 낯설지 않아야 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시작이었어.


처음부터 혼자 시작하기엔 손이 서툴렀어. 바느질 수업을 등록했는데 첫 수업을 들은 날 펑펑 울어버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들을 에덴동산에서 떠나보내며 첫 옷을 지으셨던 마음'이 떠올랐거든. 모든 것이 공급되고 온전히 안전할 수 있는 에덴동산을 떠나보내며 하나님은 얼마나 걱정되셨을까.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눈에 밟히셨을까. 그 마음을 생각하자니 자꾸 눈물이 났어. 옷을 입혀 보냈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어. 완전한 보호에서 너를 내보내야 하는 내려놓음.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구나.


중학생 때의 꼼꼼한 버릇이 사라지지 않아 진도가 더뎠어. 시간이 흐를수록 네가 커져서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웠지. 모자와 턱받이를 마치고 배냇저고리를 짓기 시작했던 날, 마음에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라.


"네게 정말 소중한 선물을 주마. 선물은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란다. 네 목숨을 내어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랑. 그동안 들어본 적 있고 읽어본 적 있지만 가져본 적 없는, 그 사랑을 남은 평생 가지고 살게 되는 거지. 그 사랑은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이제 네게도 선물로 주겠다. 그 사랑이 때론 무겁지만, 너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나도 너를 사랑하며 그렇게 행복하다."


나는 또다시 엉엉 울고 말았지. 널 만나면서 내가 알 수 없던 사랑 안으로 들어갔고 또 그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왔어. 너로 인해 벌써부터 '나보다 훨씬 좋은 나'가 되는 것 같아.



너를 만날 때까지 여남은 날을 앞두고 배냇저고리를 겨우 마무리했어. 다 지어진 옷은 생각보다 예뻐서 들떠 있었어. 한 땀 한 땀 완성한 나 자신이 기특하다 생각하는 중에 다시 한번 마음을 주셨어.


"네가 아무리 이 아이를 사랑한다 해도 지으신 분께서 사랑하는 것에 닿을 수 없다. 아무리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해도 아이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것을 이미 채우신 은혜에 비할 수 없다. 그러니 앞서지도 말고 걱정도 말라."


너를 걱정하는 마음에 옷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분께서는 온갖 마음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마지막엔 확실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감격의 눈물뿐이야.


내가 지은 네 옷은 서툴지만 아름다워. 네가 입은 것만으로 그럴 것 같아. 너를 상상하며 행복했고, 너를 그리며 가슴 벅찼어.


이제 너를 내 속에서 떠나보내겠지. 대신 너와 살을 비비고 눈을 마주할 거야. 걱정하지 않을게. 앞서지 않을게.


너는 내 자녀이기 훨씬 오래전부터 그분의 자녀야.


너를 향한 나의 걱정도, 욕심도, 계획도 그분께 내려놓아.


너를 내게 맡기신 그분께서 너를 사랑할 수 있도록 내게 사랑을 가득히 채워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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