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ness, 충만
그릇에 물이 찰랑거리는 순간을 생각해봐. 한 방울만 더 부으면 넘칠 것 같은. Full(가득 찬) + ness(상태). 음식이 넘치고 물이 흐를 정도로 꽉 찬 것.
이 의미가 확장되어서 마음에 감정이, 머리에 좋은 생각이, 삶에 의미가 가득할 때도 fullness라는 단어를 써.
아침.
봄날, 햇빛, 아직 침대 속에 있는데 아빠가 충만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 충만은 사랑하는 사람과 24시간 항시 꼭 붙어있지 않아 되는 거래. 늘 생각하고 마음이 그 사람을 향해 있다면 충만한 거래. 곧 너를 내보내겠지. 우리가 살과 피를 직접 나누고 있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네게 향해 있을 거야. 너로 충만할 거야.
그날은 정말 그랬어. 너를 만나기 전날 하루 종일 너로 가득했지.
오전.
주말에 가진통이 있어서 병원에 전화를 넣었어. 바로 병원으로 오래. 점심도 못 먹고 3시간 동안 검사를 받았어. 큰 이상 없대. 그동안 분만하는 장소에 대한 공포가 대단했는데 한 번 와보니 할 만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점심.
병원 가기 전부터 배고팠는데 3시간 동안 검사받고 나오니 너무 허기져. 가려고 했던 식당은 이미 휴식시간. 다른 곳도 같은 상황이었어. 출산 전 마지막으로 멋진 음식점에 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결국 병원에서 가까운 빕스에 갔어. 빕스는 뷔페 레스토랑이야. 몹시 배고플 때 가면 얼마나 많이 먹게 되는지 알지. 내일, 모레까지 버틸 정도로 엄청나게 먹었어. 배가 가득 찼어. 그런데 이렇게 배불러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은 뭐지.
오후.
꼭 가보고 싶었던 올림픽 공원에서 잠깐 걸었어. 참새보다 더 작고 통통한 새, 올록볼록 솟아나는 나무순을 보고 네게 이야기해 줬어. 개나리와 함께 큰 배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었어. 아빠가 엄마의 배가 커질수록 더 사랑스럽다고 했었는데, 오늘 사진을 보니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 너를 데리고 있는 최고로 큰 배 사진을 남겼어. 너로 충만한 배. 하지만 진짜 충만은 아직 아니었어.
저녁.
침대에 누워 어린이 성경 동영상을 보았어. 아빠가 십자가 이야기를 해 주었어. 노곤해져 살짝 잠이 들었는데 왈칵 쏟아지는 게 느껴졌어. 양수가 터지는 걸 모르면 어쩌나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더라. 모를 수가 없어. 네가 나오겠다고 톡톡, 툭툭했구나. 일주일이나 이르게. 이틀 전부터 가진통이 있어서 짐을 이미 준비해 놓았어. 덕분에 허둥대지 않고 가방 하나를 들고 나섰지. 아빠는 평소 느긋하게 운전하는 편인데 오늘만큼은 총알택시기사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향했어.
밤.
진통은 시작되었지만 늦은 시각이라 병원에서는 아침에 수술하자 했어. 진통을 확인할 수 있는 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가족은 못 들어온대. 아빠 없이 오롯이 너와 나만 있는 방이었어. 처음엔 긴장해서, 나중엔 아파서 잠들기 어려웠지. 진통 사이사이에 아픔을 잊기 위해 몇 자 적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를 보내신 분과 너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데, 엄마만 몰랐나 봐. 너를 만나기 직전 두려움이 자연스레 사라졌어.
새벽.
잠을 못 자고 후후, 흡흡 거리고 있으려니 의사 선생님이 무통주사를 맞으러 가야 한대. 척추에 뭘 놓는다는데 몹시 무서웠어. 출산 과정 전체 중에 제일 긴장한 순간이었지. 효과는 바로 나타나서 주사 맞고 나자 푹 잠들었어.
아침.
얼마나 잤는지, 그저 더 자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이 내 몸을 살펴보더니 얼굴이 하얘졌어. 아니 흙빛이 되었나. 자는 동안 아가가 나오는 문이 다 열려버린 거야. 너는 머리가 위로 있었어서 무조건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 문이 다 열리면 위험한 거래. 아프지 않았냐, 몰랐냐. 전혀 몰랐어. 엄마가 무통주사 잘 받는 체질인가 봐. 잠이 덜 깼는데 이미 수술실로 옮겨지고 있었지. 모든 건 신속했어.
네가 울었어.
필요한 조치를 마치고 간호사가 젖가슴께에 네 얼굴을 잠깐 두었지.
"드림아, 엄마야."
너를 만나는 과정은 그랬어. 모두의 출산이 그렇듯 평범하지 않고, 고비가 있고, 기다리고, 아팠지만, 끝끝내 행복했어.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충만했어. 내 품에 네가 있었어. 너를 언제나 생각하고 내 마음이 너를 향해 있는 삶. 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내 삶이 의미로 넘쳐흘렀어.
드림아, 네가 나를 가득 채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