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Whole, 온전한

by 참읽기
Whole은 고대 영어 hāl 에서 왔어. 처음에는 "건강한"이라는 의미였는데, "상처가 없는"을 거쳐 "온전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어.

어떤 손상이나 결핍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



너를 사랑해.
너와 얼굴을 마주한 지 이제야 50일 남짓 되었어. 네가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마치 네가 없던 시절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이전의 내가 없어져 버린 듯, 36년의 내 모든 삶은 이 50일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아. 50일이라는 조각을 만나 삶이 온전해졌어.



부작용도 있어. 널 만나기 전 내가 무슨 일을 잘했는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데, 너를 돌보는 일에도 너무 미숙하니 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



엄마라는 이름이 그냥 붙는 게 아니더라. 이제는 참아야 하는 것들 투성이 되었어. 밤낮 가릴 것 없이 쏟아지는 잠을 참아야 하고, 등골까지 찌릿데 젖을 물려야 하고, 손목이 시큰해도 너를 안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치기 어린 시절, 내 엄마에게 힘든 것, 아픈 것, 서운한 것 다 참지 말고 그때그때 말씀하시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내 엄마는 나의 그 매정한 말도 참아 삼켰어. 엄마는 참는 사람이겠지.


만화에서 장난스레 과장한 줄 알았던 것들이 그대로 나의 일상이 되었어. 얼굴에 화장은커녕 로션도 못 바르고, 젖 물리기 좋은 후줄근한 티를 입고, 청학동에서 갓 내려온 사람처럼 머리를 묶어. 서서 밥을 먹는데 그나마 먹기라도 하면 다행이야. 화장실 갈 틈도 잘 안 나.


그래도 보상이 있어. 해질 무렵 후북하게 젖을 먹고 내 품에 안겨 네가 보내주는 웃음. 싱긋, 빙그레, 헤죽헤죽, 껄껄. 딱히 의미 없는 배냇웃음이라고 해도 내겐 큰 보상이야. 불만족스럽고 힘들었으면 울었을 텐데 적어도 울지 않았잖아. 만족과 평안함 사이 어디에 네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그 웃음을 받곤 해.


며칠 전 너를 맡기고 잠시 외출했어. 식사하면서 널 생각하고, 네 옷과 네 비누를 사고, 너와 나갈 때 쓸 만한 기저귀가방을 구경하고 돌아왔어. 세 시간 정도 걸려 집에 와 너를 만났는데 하루 만에 만난 듯이 몹시 그리운 느낌은 뭘까. 젖물리기 좋은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고 너를 안아. 내 품에서 자는 너를 보니 알겠어. 빠졌던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해지는 사이. 이제 내 자리는 너란다.


너를 사랑해.
너에 대한 사랑은 밝고 찬란면서 깊고 묵직해. 어떻게 양립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내 속에서 그래. 엄마가 되었기에 나는 평생 이 찬란한 묵직함을 고요히 지고 갈 거야. 커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네 입가에 지어지는 웃음을 보면서.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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