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원숭이

Providential, 준비하신

by 참읽기
Provide=Pro(앞으로) 일어날 일을 vide(videre:내다보고) 준비해 놓는다로 "공급하다, 마련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여기서 나온 providential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건 하나님께서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시는 이라는 뜻이야.



너와 만나기 3년 전 엄마 아빠 아프리카 케냐에 살았어. 선교사님을 도와 엄마는 학교 행정을, 아빠는 건축을 맡아서 1년 동안 섬겼지.



주말이면 읍내에 크게 열리는 옷 장터에 종종 가곤 했어. 엄마 아빠는 읍내에서 차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깊은 산속 학교에서 살았기 때문에 읍내서 옷을 구경하고 치킨을 먹는 건 주말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치였어. 뒤돌아 보면 거기에서 옷 구경했다는 게 좀 창피하긴 하지만. 옷을 구경하다 보면 산골에서 벗어나 평생 익숙한 도시로 돌아온 것 같았지.



옷 가격은 보통 700원에서 1400원 사이였어. 정말 싸지? 정말 싸지? 그것보다 비싼 옷은 추워서 산 솜점퍼였어. 아프리카가 춥다는 걸 그때 알았지. 많은 옷들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중고 또는 재고로 넘어온 옷들이었어. 어디서 들어봄직한 브랜드의 티셔츠와 바지들이 길바닥에 가득히 쌓여 있었고, 30여 명 정도 되는 장사치들이 돗자리로 자리 자리해서 나름의 스타일 대로 옷을 정리해 가며 팔고 있었지.



그날은 처음으로 아가 옷을 파는 마마를 만났어. 백화점에, 조명받으며, 옷걸이에 걸린 게 아닌데도 아가 옷은 그 자체로 귀여웠어. 한국이었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야. 엄마가 너를 기다린 시간이 길었잖아. 아가 옷을 쳐다보면 괜히 청승으로 보일까 봐 절대 관심도 가지지 않았어. 그런데 케냐니까,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마음이 자유로웠나 봐. 아가 옷을 이것저것 집어 들었어.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 계산하지 않고 사버렸어. 무지개 옷 하나, 하늘 옷 하나, 홍 옷 하나.



1년 뒤 한국에 돌아와 짐을 풀다가 아가 옷 세 벌을 발견했어. "왜 샀지?" 싶으면서도 버릴 수가 없었어. 깨끗이 빨아서 계절 옷상자 한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넣어놓았지. 상자를 정리하면 아가 옷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곤 했어.



그로부터 2년 후, 너를 가지고 겨울이 다가올 때 옷 정리를 하다가 옷상자를 꺼냈어. 무지개 옷, 하늘 옷, 분홍 옷... 원숭이에 분홍? 우리 아가 원숭이띠 딸인데! 나도 모르게 어머어머 소리 냈어. 사진 찍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다들 신기하대. 어떻게 알고 샀냐고. 고 샀을 리가 없지.



누군가는 그냥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어. 맞아, 우연일 수도 있지. 그런데 엄마에겐 이 옷이 아브라함이 올라가던 산 위에, 뿔이 수풀에 걸린 양처럼 느껴져. 필요한 순간,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것.


알고 계셨구나.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신 섭리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 "다 알고 있으니 웃으며 살아. 맘 놓고 살아." 케냐 장터에서 흘리신 작은 유머 같은 선물이야.



네가 집에 오고서 옷을 입혀보았어. 외국 브랜드 New Born 사이즈는 한국 신생아한테 작다더니, 너무 꽉 맞아. 너의 발육속도로 봤을 때 한 번 입고 못 입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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