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Reflective, 반성하다

by 참읽기
Reflect=Re(back; 뒤로) flective(flectere; 구부리다) 뒤로 몸을 구부려서 보는 것이야. "반사하는, 반성하는"

뒤로 몸을 구부려서 보면 내 몸이 "반사되어" 보이지. 반사된 것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되짚어. 그렇게 우리는 "반성하는" 거야.


이건 너에게 쓰는 편지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쓰는 반성문이기도 해.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반성문을 적어.


너를 낳기 전 긴긴 겨울 동안 자주 외출이 금지됐어. 춥다고, 길이 얼었다고, 멧돼지가 나온다고(서울에 멧돼지가 나온다니 믿을 수 있겠니?) 이유도 다양했지.


집에 있을 때는 책을 자주 읽었어. 임신 중이니까 손에 잡히는 건 당연히 임신과 육아에 관한 책들이었지. 50여 권을 읽었어. 심지어 어떤 책은 부분적으로 옮겨 적기도 했어. 김훈이라는 작가님이 계셔. 자전거로 땅을 지그시 밟아가듯 한 자 한 자 손으로 쓰면, 그 글들이 몸에 새겨진다고 하셨어. 나도 손으로 글을 옮겨 적으면 그렇게 너를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았지.


생각 속에서 나는 이미 육아 전문가였어. 울음소리만 듣고도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너를 안지 않고 뉘어 재우고, 네가 울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도 달래지. 머리로는 너를 프랑스 아이처럼 키우고 있었어. 웃기지? 엄마가 초등학생들을 가르쳤기에 더 자신 있었어. 신생아 때부터 너와 이성적으로 대화하며 기를 수 있다고 확신했어.


그게 끝이 아니야. 책과 인터넷에서 읽고 들은 것으로 다른 엄마들의 육아를 보았어. 마트에서 식당에서 교회에서 인터넷에서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내 부모의 과거에서. 나도 모르게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평가 내렸어. 아무것도 안 해본 내가 이미 실전에 있는 사람들을 감히.


요즈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많이 도와주고 계셔. 집안일은 물론이고 너를 돌보는 일도. 네가 집에 온 후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해댔어.


"세워서 안아야 해요."

"젖병은 거품이 안 나오게 잡아야 해요."

"아가를 그냥 두면 안 되고 계속 말을 걸어야 해요."

"밤이 되면 집을 어둡게 만들어야 해요."

"불 끄세요."

"아가는 뉘어 재워야 해요."

"계속 안으면 손타요."


마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키웠던 방식이 잘못된 것처럼 말했지.



그런데 너를 낳고 70일이 지나자, 자신했던 모든 게 무너졌어. 나는 너를 제대로 안을 줄도, 먹일 줄도, 씻길 줄도 몰랐더라. 네가 울면 나도 따라 울고 싶었어. 안아서도 겨우 겨우 재우는데 뉘어서 재우라는 게 가능한가? 너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잣말을 했어. 임신 기간 동안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실전에서 아가 돌보는 법을 배웠어야 했더라. 70일이 지나고 보니 이 시기를 지나간 모든 엄마들이 대단해 보여. 다들 나보다는 훨씬 잘했을 것 같거든.



그리고 외할머니에게서 배웠어. 아가를 기를 때는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아가의 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책이 가르쳐주는 기본을 알고 있는 건 좋지. 하지만 지금 내 아가에게 필요한 건 아가가 눈으로 소리로 온몸으로 말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것을 외할머니는 보여주셨어. 그리고 덧붙이셨지.


"사랑으로 키운 자식은 결코 엇나가지 않다. 언젠가 돌아온다."


머리 아닌 가슴으로 평생 나를 키운 엄마가 이제야 보여.



한 번은 꿈에서 네가 아팠어. 119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꿈이 아니었어. 내가 정말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더라. 내가 내 소리에 놀라서 잠에 깼어. 얼른 달려가 네가 괜찮은지 확인하고는 다리 힘이 풀려 바닥에 엎어져 꺼이꺼이 울었어. 아빠가 왜 그러냐고, 괜찮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 없었어.



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런데 울면서 생각해 보니 현실에서도, 네 몸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라. 마침내 고백했어.


"이 아이는 내가 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이입니다.

하나님만 기르십니다.

온전히 맡깁니다."



비좁아 터질 것 같 속을 드러내고 나니 후련해어. 어제 병원에서 재어보니 너는 태어날 때보다 키가 6cm나 자랐. 무럭무럭 자라는 네 곁에서 나는 엄마로서 1cm라도 자랐을까. 이렇게 돌아보고 반성했으니 0.1cm는 자랐으려나.



오늘은 필요 없는 힘을 조금 더 빼보려 해.


30일 뒤, 네가 온 지 100일이 되는 날, 너처럼 엄마도 자라 있기를 바라.




[사진출처 unf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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