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Grow, 자라다

by 참읽기
옛날 영어로 grōwan이라는 단어는 “자라다”를 의미했어. 특별히 식물이 싹트고 푸르게 되는 성장을 지칭하는 말이었지.

식물이 자라기 위해 햇빛, 물, 공기, 흙이 힘을 불어넣어 줘. 하지만 성장이란 결국 스스로 힘을 내어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야.


아침 일찍부터 놀이터 한 판 신나게 놀고 오던 길이었어. 기찻길을 만들어 걸어가는 어린이집 아이들을 너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어.

"엄마, 쟤네들은 어디가?"

"어린이집에. 어린이들이 선생님하고 놀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곳이야."

"나도 어린이집 갈래."

36개월까지 품에 끼고 있으려 했는데, 때가 왔어. 그렇게 30개월부터 너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어.


첫날 엄마는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고, 너는 시작부터 흥분했지. 둘째 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들어간 뒤통수만 보았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친구들하고 놀려고 급히 양말을 벗어던졌다고. 셋째 날, 선생님에게 '밤새 어린이집 오고 싶었다'라고 말했대. 잘 적응하나 싶었지.


『랩걸』이라는 책은 말해. 씨앗 땅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우리는 숲에서 높이 자란 나무를 올려다보지만, 발아래에는 수백 개의 작은 씨앗이 살아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어.


한 달쯤 지났을까. 가족여행 가느라 빠지고, 명절 지내느라 빠졌더니 결국 사달이 났어. 추석 연휴 다음날 등원 후 문이 닫히자마자 네가 엉엉 울며 엄마를 찾았어. 몇 분 간 문 앞에서 기다렸지. 선생님께서 날 부르지 않는데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섰어. 아직 요일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중간에 놀아버렸으니, 그럴 만 해.


금요일, 하원하고 "내일 어린이집 가는 걸까?" 했더니 너는 영락없이 "응"이래. 다 되어가는 9월의 달력을 급히 떼어서 색칠했어. 일요일은 빨간색, 월화수목금요일은 검은색, 토요일은 파란색. 요일 위에 해당하는 건물 모형을 올렸어. 일요일에는 교회, 월화수목금요일에는 어린이집, 토요일에는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너 신나서 덧칠하고 건물 모형을 올렸어. 여기저기에. 요일 색깔은 다 섞여버렸지. 어디까지 알아들었을까. 어린이집 가는 요일은 기억할까.


식물이 뿌리 뻗는 건 고정하겠다는 의지야.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내려놓는다, 아쉽지. 그렇지만 뿌리가 생긴다는 건 식물에게는 대단히 든든한 일이야. 잎, 줄기, 지상의 모두가 떨어져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식물은 살아거든. 몇 번이라도 다시. 근거지 있으니까.


10월이 되었어. 늘 밝던 네가 자주 울었어. 며칠 전 잠자리에서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 울 것 같아." 라 하기에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무슨 생각이 많은 건지 엄마에게 말하고 싶으면 말해도 돼."라고 했어.

, 결국 많은 생각이 무엇인지 못 들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웃으며 잠들었지. 아직 생각을 말로 풀어낼 수 없어서 못하는 걸까.


식물은 뿌리를 내리자마자 모든 에너지를 모아 이파리를 피워. 햇빛을 만날 때야. 그러나 이제 막 땅 속을 뚫고 나온 식물은 숲에서 가장 작아. 그늘터 만나. 햇빛을 직접 만나기까지 다시 오래 견뎌야해.


오늘 아침 어이

"어린이집에 늦게 갈 거야."

"집에서 놀다가 갈 거야."

"어린이집 안 갈 거야." 하며 울어.

킥보드 타고선 교회도 가고, 시장도 구경하자며 달래고 꼬셔 겨우 나왔어. 정말로 킥보드 굴리며, 교회도 들르고 시장도 통과했지. 느 순간 네가 킥보드 위에 멍하니 서서 또 우는 거야.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뭔지 모르겠어. 나는 너를 꼭 안아 들고 서성대. 네가 6개월 아가이던 시절이 떠올라. 몹시 많이 울던 때가.


이제 가겠다 하여 너를 안고 걸었어. 어린이집 앞에 다다르자 네가 또 울어. 이럴 때 엄마가 망설이면 아이가 더 힘들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셔. 너와 선생님께 인사하고 황급히 복도를 빠져나. 우는 소리가 밖으로 들려. 날이 시 찬데 마음은 말로 할 수 없이 더 시려.


나는 왜 32개월인 너를 안고 6개월의 너를 떠올렸을까. 그때도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일 거야. 기를 쭉 잡아당기고 이파리를 마구 펼쳐 놓고선 많이 길렀다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스스로 뿌리에서 힘을 내고 싹이 우두둑 터지는 아픔을 이겨내며 1밀리, 2밀리 자라야 하거든. 하도 미미해서 당장은 얼마나 컸는지 보이지 않아. 하지만 모아놓고 볼 때마다 나는 너의 성장에 어김없이 놀랐어. "이만큼이나 자랐네!" 하며. 그러니까 너를 안고 서성대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지만, 그게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믿어.


마침내 낮잠시간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 때문에 네가 어린이집에 가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았어. 긴 이야기 끝에 낮잠 인형 친구를 새로 사귀기로 했지. 너는 강아지 인형을 고르고 김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많지 않아. 햇빛과 물이 있어도 결국 싹을 틔우는 건 너니까.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너를 마음으로 안고 서성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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