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주어와 일치, 시간의 모양

by 참읽기

동사는 행동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줘. 네가 매일 하는 것들을 생각해봐. 걷다, 달리다, 먹다, 마시다, 웃다, 찡그리다. 이런 행동들을 우리는 동사라고 불러.


나는 걷는다. 나는 웃는다. 나는 먹는다.

I walk. I smile. I eat.

수하는 걷는다. 수하는 웃는다. 수하는 먹는다.

Suha walks. Suha smiles. Suha eats.

동사는 늘 주인공 옆에 붙어 다니면서 "이건 이 사람의 행동이야"라고 알려주지. 엄마가 걷는 거랑 수하가 걷는 건 다르잖아? 그래서 동사는 행동의 주인을 꼭 기억해두려고 해. 물론 생각하다, 발견하다, 꿈꾸다, 기억하다처럼 눈에 안 보이는 행동도 동사야. 이건 나중에 더 알려줄게.


첫 돌이 분수령 된 것처럼 갑자기 너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졌어. 뒤뚱뒤뚱 걷고, 혼자 밥을 먹고, 말소리가 선명해져. 문제가 생겼어. 모든 걸 스스로 하려 해. 엄마에게 자꾸 놓으래. 내가 보기엔 위험천만 투성인데. 해서 나는 너를 붙들었어. 뒷덜미를, 숟가락을, 말꼬리를 부여잡았어.


한참 그러다 깨달았어. 놓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걸. 너는 시간에 알맞게 성장하고 있었어. 엄마와 한 몸처럼 지내던 아가 시절을 넘기고 너만의 행동으로 무척 즐거웠지. 나 혼자 '우리 한 몸이었잖아' 하며 너를 붙잡고 아쉬워하고 있었어.


그렇게 너의 행동을 지켜보며 나는 동사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


동사를 보면 행동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어.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거든. 그런데 동사는 '언제'보다 더 궁금한 게 있어. '어떻게' 일어났는지야. 행동이 펼쳐지는 모양 말이야. 예를 들어볼게.


너는 어제 재채기했어. (끝났어)

너는 한동안 기어다녔어. (계속했었어)


벌써 다르지?

너는 걸을 수 있게 되었어. (지금도 할 수 있어)

너는 지금 달리고 있어. (바로 지금!)


같은 행동이어도 그 모양이 다 달라. 점처럼 딱 찍힌 행동도 있고, 선처럼 길게 이어진 행동도 있어. 그 경험이 지금도 남아있는 행동도 있고, 바로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행동도 있지. 우리는 이걸 "시간의 모양"이라고 불러. 동사가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건 바로 이거야.


네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점점 늘어가면서 나는 지나간 일을 생각해. 어느 날 너는 귀엽게 재채기했어. 딸꾹질도 했었지. 또 생각해. 한동안 너와 내 삶을 가득 채워주었던 행동이지만 지금은 없는 것을. 너는 더 이상 뒤집지 않고, 기지 않고, 붙잡고 서서 흔들거리지 않아.


그러나 지금 그 행동을 안 한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게 아니야. 그 시간이 너를 길렀어. 뒤집을 수 있어서 앉을 수 있었고, 앉을 수 있어서 설 수 있었고, 설 수 있어서 걸을 수 있었어. 켜켜이 쌓인 행동 위에 새로운 행동이 피었지. 지금 너는 걷고 달리고 점프할 수 있어. 앞으로 쭉 힘차게 그러겠지. 이제부터 배우는 행동은 네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몸에 붙이고 지낼 거야.


수하야, 동사의 세계에 들어간 걸 축하해. 그곳은 엄마가 없는 너만의 세상이야. 눈에 보이는 행동을 배우고 익히다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는 행동도 즐길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입구 언저리에 놀러 와서 네 행동과 시간의 모습을 세어볼게. 어떤 행동이 오고 갔는지, 지금 어떤 행동이 계속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이 다음 행동의 씨앗이 되어주는지. 네가 얼마나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지 감탄하며 바라볼 거야.


그리고 엄마도 엄마만의 동사를 다시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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