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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 묏버들 가려꺾어 – 창 밖에서 피어나는 여자

by 허독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대

자시난 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서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녀기소서


洪ᆞ娘


홍랑은 조선 왕조 선조 시대 함경도 경성에 살았던 기생이라고 합니다. 선조 6년 당시 관리 최경창이 경성에 일년 남짓 가 있다가 이듬 해 떠날 때에 영흥까지 따라 온 후 함흥과 신포 사이 함관령이란곳에서 이 노래와 버들가지를 주면서 이별하였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함관령과 경성은 꽤 먼 길입니다. 당시에는 더욱) 즉, 서울에서 온 공무원과 관기가 현지에서 정분이 나고, 여자가 쓴 편지가 400년 지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지요.


현대말로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멧버들 가려꺾어 보내노라 님에게로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이 시를 가만히 읽어보면 이런 패러디가 생각납니다.


작약 화분 고이 피워 보내노라 님에게로

주무시는 침상 곁에 놓아두고 보소서

님 숨결에 붉은 봉우리 피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금방 드러납니다. 홍랑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였는지. 자기 자리는, 그 남자가 있는 곳 어디쯤에 있는지. 조선시대 판 ‘창 밖의 여자’라고 할까요?


관기는 어떤 여자들이었는지, 지방으로 내려간 관리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사람의 자유로운 감정은 어떻게 사회 제도, 이념 이런 것들에 의하여 억압 받는지 이런 것들을 여기서 세세하게 다시 쓸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끌림은 자연의 본성이라는 것과 이 본성은 사회제도의 일정한 통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참고 다스려야 할 때가 있고, 참지 말고 분출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별”이라 부릅니다.


홍랑과 최경창은 그 뒤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났을까요? 저는 잘 모릅니다. 아마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 나라로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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