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학습 바이블]을 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 문제집을 채점을 합니다.
채점을 할 때마다 깊숙이 숨겨놓았던 분노가 용암처럼 스멀스멀 분출할 때가 있습니다.
아침 일찍 남편과 아이를 출타시켜놓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합니다.
이 방 저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틀어놓고 세탁기에 그간 모인 빨래을 집어넣습니다. 빨랫줄에 걸려있었던 빨래도 걷습니다.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먼지를 빨아들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창틀에 쌓인 묵은 먼지를 물티슈와 젓가락을 이용하여 닦아보았습니다. 마음이 상쾌해지네요.
하는 김에 화장실 욕조에 핀 불그스름한 물때를 세제를 이용하여 닦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지난주에 공부했던 아이의 문제집 한 무더기를 거실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마음 편하게 문제집을 폅니다.
매주 다른 색의 색연필을 이용하여 채점하는 데 오늘은 파란 색연필이 당첨되었습니다.
맞은 문제는 정성스럽게 작은 동그라미를 칩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틀린 문제가 나옵니다. 작은 별표를 꼼꼼하게 그립니다.
어... 연이어 또 틀립니다. 다시 별표를 칩니다. 입가의 미소가 점점 사라집니다.
어. 어. 이 녀석... 또 틀립니다. 나의 감정이 잔뜩 들어간 별표는 화가 난 것처럼 뾰족해집니다.
다행히 다음 문제, 또 다음 문제 맞았습니다. 다시 평정심을 찾아 착한 작은 동그라미를 칩니다.
도형문제가 나왔습니다. 아직 도형의 정의에 대하여 이해를 못 했는지 한 바닥이 다 틀렸습니다.
'그래... 도형의 정의에 대하여 다시 공부시켜야겠군.' 다짐을 합니다.
다짐은 하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짜증이 밀려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온라인 수학 공부를 했고, 그간 잘 알아듣는 것 같았는데, 정녕 이것도 몰라?'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옵니다.
'내 이놈의 시끼를 오늘 한번 잡아야겠다.'며 다짐과 함께 부르르 떱니다.
저는 수포자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아이 수학을 봐줄 때면 모르는 문제가 수두룩 합니다.
제가 이해를 못 하고 버벅거리는 걸 아이가 풀어낼 때면 너무 신기해 폭풍 칭찬을 해줍니다.
'혹시 얘가 천재가 아닌가?'라며 살며시 의심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근데, 제가 맞고 이해가 되는데 아이가 이해를 못 하고 버벅거리면 '혹시 얘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나 많이 익혔다고 생각한 영어단어를 모를 때는 이건 뭐... 우리 아이는 대역죄인이 됩니다.
한 명의 아이가 천재가 되었다가 바보가 되었다가 대역죄인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임 작가가 쓴 [완전학습 바이블]을 보면서 아이의 공부 정서를 망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배꼽 밑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아이 앞에서 공부로 화를 내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찌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기 앞에서 제발 채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인상 쓰는 제 모습이 무섭고 싫은 겁니다. 또 틀린 문제로 참았던 화가 불쑥 튀어나오면 아이는 "뭐 멍청할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라며 항변합니다.
맞습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이해 안 되면 반복하고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는 거지 어쩌겠습니까?
문제 좀 틀리는 게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겠습니다만.
눈치 없는 저의 분노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문제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낮잠 좀 많이 자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그 마음을 잊게 됩니다.
4학년이 된 아이는 아직도 엄마 입술에 뽀뽀를 쪼오옥 해주는 어린아이인데 전 자꾸 뭘 더 바라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