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를 존경하는 우리 아이

오늘은 어나니무스도 되고 싶다고 하네요.

by 노정희

지난번 발행했던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했다'라는 글을 아이가 읽고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글은 모두 재미있다니 너무 다행이다.

자신감을 얻어 아이의 특이한 소행에 대해 좀 더 써봐도 될 것 같다.


이제 4학년이 된 남자아이인데 장래희망이 매일 같이 바뀐다.

오늘 오전에는 어나니무스 (국제 해커조직)의 일원이 되겠다고 했다.

요새 IT직종이 엄청난 인기인지라 완전 찬성이기도 했고, 내심 그런 실력자가 되는 것이 서울대 가는 것보다 어려워 보여 대충 오케이를 날려주었다. 뭐 사실 내가 하지 말라면 안 하고, 하라고 하면 하겠는가? 해커가 좋다 나쁘다 해봤자 되지도 않을 거 뭐하러 아이랑 실랑이를 하나 싶어서 이기도 했다. 그런 허접한 이유로 난 웬만하면 대충 다 오케이다.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인물은 일론 머스크다. 그의 기이한 천재성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자기도 커서 엄청난 재벌이 되어 화성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꼭 그렇게 되길 바라며, 혹시 가게 될 때 나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화성에서 살면 좀 불편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죽기 전에 우주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는 음모론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는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그대로 실행하는 과감성이 있다.

3학년 2학기쯤 아이가 수학 과목 중 통계 비스무리한 개념을 배웠.

갑자기 아이는 내일 일찍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7시에 일어나서 혼자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는 스케치북과 스티커를 챙겨서 7시 50분에 등교를 했다.

날씨도 춥고 감기 걸리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난 웬만하면 아이를 말리지 않는다. 해볼 수 있는 건 불법 아니면 다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개똥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8시 반쯤 넘어서 동네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네 아들, 학교 앞에서 뭐하던데 뭐 하는 거니?"

"응,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무슨 설문조사를 한다나 봐..."


아이는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정문 앞에 앉아 설문을 받았다고 한다.

설문내용은 "당신이 가위바위보를 할 때 어떤 것부터 내시나요?"라는 질문이었고 100명이 넘는 친절한 아이들이 설문에 응답해주었다고 했다. 가장 많은 답은 "가위"였다.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를 칭찬해주시고는 설문 조사한 자료를 수업교재로 사용하시겠다고 가져가셨다.


3학년 말 때쯤 인성 감성교육 시간에 기부와 모금활동에 대한 수업을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로 나가서 택배박스를 칼로 슥슥 오리더니 기부함을 만들었다.

그러곤 자기는 잠깐 나가서 모금을 하고 구세군에 기부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특별히 나쁜 짓은 아닌 것 같았다.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하 15도 넘는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릴까 봐 털부츠에 롱 패딩잠바를 입히고 산타모자도 씌어주었다. 아이의 외출을 도와주는 나는 계속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가 나간 지 좀 지난 후 정말 모금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 전철역으로 나갔다.

아이는 기부 상자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금을 받고 있었다.

항상 사람들 앞에 서면 부끄러워하는 나의 성격이 싫었던 나는 그런 거침없는 모습의 아이가 좋아 보였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기둥 뒤에서 아이를 몰래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어 남편과 친정식구들, 가까운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심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남편은 얼른 잡아오라고 했고, 엄마는 우리 손자 참 기특한데 좀 특이하다고 했다. 언니는 애를 왜 저렇게 하게 두냐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혀를 내둘렀다. 친구들은 아이의 행동을 신기해했고 긍정적으로 봐주었다. 또 남을 돕는 예쁜 마음이 좋다고 칭찬해주었다.


다양한 반응에 머릿속은 시끄러워졌고,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오늘은 여기서 모금을 끝내고 옆에 있는 구세군에 기부하자고 했다.

아이도 기분 좋게 따라주었고 구세군 할아버지는 아이를 꼭 안아주시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한 가지 사건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마냥 아이라고 귀엽고 예쁘게만 봐줄 수 있는 건 아닐 수도 있다 것도 말이다.

언니는 특히 모금과 같이 돈과 연관된 행동에는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앵버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따끔한 조언을 날려줬다. 새끼라 마냥 예쁘고 모든 행동에 칭찬만 받을 줄 알았는데 간만에 뼈 때리는 조언을 받아 기분이 나빴다. 따지고 보면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절차를 알아보고 행동하자고 했고 아이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4학년이 되어서는 갑자기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안 쓰는 장난감을 가지고 나갔다. 화창한 토요일, 놀이터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는 장난감을 팔았다. 이만 원이 넘는 보드게임을 이천 원에 파니 장난감은 금세 다 팔렸다. 총수익금은 만 팔천 원이었다. 돈 맛을 본 아이는 집안에 있는 장난감을 더 찾아내기 위해 온 집안을 휘집어놓았다. 다음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는 이런 비 오는 날에는 손님도 없으니 나가지 말라고 했다. 사실 장사 놀이는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아이는 놀이터 정자 밑에서 팔면 된다며 꾸역꾸역 나가더니 하나도 못 팔고 다시 들어왔다. 이제 장사 놀이는 그만하겠구나 싶어 내심 좋았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인 아이는 다음 주 토요일 또 장사를 하러 나갔다. 아이의 장사 놀이를 구경하던 다른 집 아이들도 삼삼오오 장난감을 팔겠다며 같이 돗자리로 모여들었다.

장사 놀이를 끝내고 아이는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자기 오천 원어치 밖에 못 벌었는데, 다른 아이는 포켓몬 카드를 팔아서 이만 원이나 벌었다고 했다. 나는 이게 울 일인가 싶었지만 아이는 장사에 진심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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