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겨우 4박 5일 여행계획 세우기가 무슨 이리 품이 많이 들었는지.
이 과정이 너무 귀찮아 단체패키지여행을 알아보았으나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 패키지여행이 마땅치 않았다.
물론, 완전히 가격적인 면에서만 생각을 해보면 무조건 패키지여행이 가성비 갑이지만 여행 기간 안의 시간도 돈이기 때문에 나의 시간을 원치 않는 쇼핑을 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나처럼 까탈스러운 여행자를 위해 노쇼핑, 노옵션을 내세우는 패키지여행이 많았으나, 가격이 꽤나 비쌌다. 내가 여행계획을 세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력의 대가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유 배낭여행계획 세우기 작전에 돌입했다.
정해진 예산과 시간 안에서 최적의 여행을 뽑아내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인터넷을 배회했다. 동남아의 어디는 12월이 우기라 제외! 또 어느 지역은 12월이 최대 성수기라 비행기표, 숙박비가 너무 비싸 제외! 또 어느 지역은 비행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제외!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인지.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 것인지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12월의 여행 장소는 일본 도쿄로 낙점!
장소를 정했으니, 빛의 속도로 비행기를 예매했다. (사실. 원하는 시간에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서 또 몇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비밀이다.)
호텔을 검색하려면 여행 일정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동선 안에 있는 숙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일정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아이가 원하는 장소와 내가 원하는 장소를 함께 넣었다. 하루에 2개 장소를 가야 했기 때문에 길을 헤맬 수는 없었다. 환승 지옥 도쿄 지하철 안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온갖 블로그를 섭렵하며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다. 구글맵을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혹시 핸드폰이 고장이 나거나 하는 불의의 사고에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온갖 잡스러운 정보를 다람쥐처럼 모으고 또 모았다.
내가 여행을 하려는 것인지, 완벽한 여행 일정을 짜겠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가고 싶은 모든 곳을 가야 했기 때문에 4박 5일 동안 숙소 3곳을 이동했고,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캐리어 대신 백팩을 선택했다. 여행 내내 무거운 백팩 때문에 조금씩 지쳤다. 물론 지하철을 탈 때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또 다른 고충이 있었으리라. 이 세상 어떤 것도 장단점이 없는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여행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어도. 실제 여행을 하면서 사소한 실수가 없을 수가 없었다. 낯선 장소에 가서 헤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어야 했다. 그게 여행의 묘미라고 여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몇 시 몇 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 했기 때문에 실수로 인해 지연된 시간이 그렇게 아깝고 답답할 수가 없었다. 겨우 10여분 남짓 헤맨 것도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 얼굴이 벌게졌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내가 찾은 정보에 반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나의 정보에 의하면 몇 번 어디에는 나의 티켓을 실물표로 바꿔줄 정상적인 발권기가 있어야 했는데, 하필 고장이었다. 역무원에게 물어 물어 정상 작동 발권기를 찾으려고 했으나 일본의 역 안에는 여러 회사의 노선들이 뒤엉켜 있어 다른 회사의 발권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정말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짱!이다. 아무튼, 나보다 더 파워 J인 남편은 원하는 티켓을 원하는 역에서 바꾸지 못하여 얻을 손해에 대해 몹시 광분했다. 하지만 여기서 지체된 30~40분 또한 여행에서는 비용이니 어서 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겨우 설득했다. 서로 다른 곳을 알아보느라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잠깐 헤어져 헤매고 있는 동안 올라온 신경질과 불안으로 우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잊고 싸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행 중에 싸움은 필연이라고 했던가.
강행군의 여행을 하다, 너무 힘들어 하코네 호수 옆 카페에 우연히 들어갔다. 그곳은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노란빛 페인트와 얼핏 촌스럽지만 단아하고 따스해 보이는 커튼이 인상적이었던 레스토랑은 늙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호수의 거센 바람으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 찾아간 곳이라 그곳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카레밥을 게눈 감추듯 흡입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했다.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다음 일정을 생각하지 않았다. 4일째 되는 날이라 계획에 의해 바쁘게 돌아가는 여행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계획에 없던 장소, 시간, 쉼 이런 것이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었을 텐데....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도 있는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강행군을 하지 않으리라.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그것을 잠시 잊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는 것임을 또 잊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다음 여행에 나는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