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살아가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일하고, 힘들어하고, 돈에 쪼들리는 게 삶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모두 죽는 게 맞지 않나? 우리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데 자아가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자신을 거대하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마냥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의미도 모르니까. 언젠가 발견될 삶의 의미를, 죽음으로 차단하는 것 또한 급한 선택이고. 그럼에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 살아가는 것이 지친다. 나에게는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아서 그만하고 싶어진다.
죽으면 끝이라 죽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열의를 다해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살고 싶은 이유와 죽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봤다.
살고 싶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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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이유
- 힘들어.
- 일하기 싫어.
- 굳이 살 필요가 있나.
어, 나 죽고 싶어 하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망치고 싶은 건가. 도망치면 뭐 어때, 내 몸인데. 그래도 이승에서 바늘을 찾고 싶은 의향이 있기에 죽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죽고 싶기는 했다. 그때 나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고,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설교를 들어서 죽지 않았다. 교회에서 나온 뒤로는 죽음을 막는 장치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싶은 이유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닌 ‘자살하면 지옥가니까’처럼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머릿속에 적었다. 그중 항상 1번에 있는 것은 ‘엄마가 평생 우울해하며 힘들어할 것 같아서’였다.
그다음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친구와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으니까, 애인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으니까, 오늘 산 로또가 당첨될 수도 있으니까. 목록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어떤 때에는 죽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나를 가두는 것 같아 괴롭다. 최근에 꽤 힘들어했고, 목록에는 1번(엄마)과 2번뿐이었다. 2번은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가기로 해서’다. 곧 갈 일본 여행 때까지는 어떻게 살아봐야지. 친구가 돈을 날리거나, 혼자 최악의 여행을 하게 둘 수 없으니까.
언젠가는 머릿속에 있는 문서를 삭제하고 싶다. ‘죽지 말아야 할 이유.txt’ 문서 자체를 영구삭제하는 거다. 그리고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들고 싶다. 엄마나, 친구 같은 이유가 아니라, 나 자체로 살아가고 싶은 이유를 적어 내려갈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버티다 보면 새문서를 작성할 날이 있으리라, 속는 셈 치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