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꾹 깨문 채 겨울을 건너는 동안 봄을 닮은 것들이 종종 스쳐갔다. 추위에 떨던 나무들은 부지런히 빛을 모아 잎을 틔울 준비를 했다. 머지않아 둥글게 맺힌 꽃봉오리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앉을 터였다. 잔가지 끝에서도 생명이 피어난다는 약속은 해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 나에겐 시간이라는 처방전이 무심히 주어졌지만 문제는 약효가 제멋대로였다. 어느 날엔 감정을 조금 무디게 했다가, 또 어느 날엔 무뎌졌던 만큼의 고통을 한꺼번에 주었다. 마치 이 모든 게 언젠가는 눈처럼 녹아 사라질 것이니 더 마음껏 아파하라고 부추기는 듯했다. 그렇게 한차례 통증이 지나간 후 미련은 먼지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때 소낙눈처럼 빠르게 녹던 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옅은 햇살 사이로 봄이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이월의 끝자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