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by 소혜


어느 가을은 사과를 닮아 있었다. 빨갛고 예쁘지만 베어 물면 색이 변하는 과육처럼 모든 것이 금세 빛을 잃어갔다. 이윽고 노랗게 바랜 거리를 걸으며 나눈 대화는 알맹이 없이 허공을 떠돌다 낙엽 아래 묻혔다. 고작 말이라는 껍데기로 마음의 적막을 숨길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은 우습게 빗나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저 멀리 닿을 듯 닿지 않는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를 만나기 위해 버석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은 다시 긴 겨울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를 만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녹지 않는 침묵이 하얀 눈처럼 쌓이며 마음의 한쪽을 허물어갔다.




keyword
이전 20화첫 소풍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