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채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다. 생애 첫 소풍날이라 그런지 양갈래로 묶은 머리가 유난히 짱짱하다. 말갛고 작은 나는 조금 들뜬 마음에 잰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노란 버스 안에서는 늘 세상의 풍경이 어지럽고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파릇하던 나뭇잎들의 얼굴이 누렇게 뜬 것을 보며 아랫입술을 삐쭉 내민다. 어딜 가든 온통 노랑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빨간 크레파스를 꺼내 세상을 알록달록하게 칠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누가 볼까 안절부절못하며 등에 있던 가방을 품에 꼭 안는다. 하얀 얼굴이 점점 단풍처럼 붉게 물든다.
전날 선생님은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안내장에 적어 가방에 넣어주셨지만 엄마는 그날따라 정신이 없었는지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저 소풍을 가는 어린 딸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김밥을 정성스레 꾹꾹 말고 있을 뿐이다.
친구들하고 나눠 먹어.
도시락을 안 가져가도 된다는 말을 해야 했지만, 그 모습을 보자 입술이 꼭 붙은 채로 열리지 않는다. 엄마의 사랑이 눌러 담긴 도시락통이 오늘따라 유독 어깨를 짓누른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재잘대는 병아리들처럼 돗자리 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있다. 선생님들은 준비해 온 김밥과 간식을 나눠주느라 분주하다. 이중에 도시락이 든 가방을 메고 온 아이는 나뿐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고개가 푸욱 떨어진다. 하루 종일 가방을 내려놓지 않는 나에게 선생님의 시선이 머문다. 그녀는 나에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묻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괜찮으니 얘기해 보라는 말에 가방을 안고 있던 팔의 힘이 스르르 풀린다.
너 도시락 싸왔어?
노랑 옷을 입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진다. 가슴에서 작은 북소리가 울리고 소심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괜찮아. 다 같이 먹자.
조심스레 도시락통을 열자 계란말이와 김밥,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친구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다 곧 하나둘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따스한 초가을의 햇살이 돗자리 위로 내려앉고 나는 그제야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은 듯 어깨가 가볍다.
살다 보면 조각칼로 새겨진 듯 생생히 기억되는 일들이 있다. 첫 소풍은 어제 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선명한 기억 중 하나이다. 별 것도 아닌 일로 혼자 끙끙 앓던 그때의 나에게 왠지 마음이 기운다. 그날을 떠올리면 시간이 모든 기억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기억은 시간이 아닌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흐릿해지거나 단단해질 수 있다.
가끔 혼자만의 짐을 안고 있는 기분이 들면 이 오래된 기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집에 가는 길, 달그락 거리던 빈 도시락통 소리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던 여섯 살의 나를 떠올리면 픽 웃음이 새어 나온다. 때로는 소풍날 잔뜩 싸 온 도시락처럼 나누어야 더 좋은 것도 있다. 부끄러움이나 실수를 책망하지 않고 함께 공감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떠올리면,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펼쳐놓을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