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 없다면 이직은 반복될 뿐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채용 공고’라는 단어에 눈이 머문다.
잡코리아, 원티드, 사람인, 그리고 또 다시 리멤버.
창을 열고, 닫고, 다시 열다가… 결국 한숨만 남는다.
나를 원하는 좋은 회사는 없다는 걸 이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어딘가에는 내가 더 살아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도 검색창을 떠나지 못했다.
벚꽃이 떨어질 즈음에 진행되었던 연봉협상 통보가 서운했던 친구가 카카오톡 단톡방에 남긴 문장
“이번엔 정말 그만두고 싶다.”
이 말은 어쩌면, ‘이 조직이 싫다’가 아니라
“이 조직 안에서 나는 너무 작아졌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직을 고민할 때,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력해진 내가 더 힘들었던 건 아니였을까.
우리는 종종 ‘성장을 위해 이직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종종 불안과 강박, 그리고 자기부정이 숨어 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더 나은 나여야 하니까요.”
“남들 다 바뀌는데 나만 제자린 것 같아서요.”
이 말들이 성장에 대한 고민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스스로를 더 쫓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직은 삶의 선택일 수 있지만 내 존재의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진짜 성장은 더 나은 나가 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통합하는 일이다.
상담심리에서 말하는 성장도 더 많은 성과나 자리를 뜻하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자아
실패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내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언어
그게 진짜 성장이다.
이직을 고민하기 전에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지?
내가 원하는 건 조직인가, 역할인가, 존중인가?
이직 후 나는 현재의 나로부터 얼만큼 달라질 수 있을까?
떠난다고 내가 바뀌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나를 회복한 후에야 다음 걸음도 의미 있어진다.
하지만 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회사라는 이름 아래 무너지고, 삼키고, 버텼던 나를 다시 일으키는 일.
그게 나를 살리는 진짜 이직이고, 그게 진짜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