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에게는 아주 심각한 강박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증상은 없어져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저 스스로를 정말 힘들게 했던 강박증이었습니다.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지금도 헷갈리지만 일종의 ‘정리 강박증’의 일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심했던 건 중학생 때부터로, 대안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평상시에 가지런한 걸 좋아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리된 물건이 제가 정리해 놓은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견디딜 못했습니다. 또한 물건을 제 기준으로 완벽하게 정리해 놓지 못하면 심각한 불안증상에 시달렸으며, 방에서 나와 수업을 듣다가 그 사실이 떠올리면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얼른 정리를 해야 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이 거의 하루 종일 몇십 번씩 반복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초래했고, 공부에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죠. 얼른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데 제 방식대로 반듯하게 물건을 정리하느라 결국 지각을 해서 혼난 적도 많았습니다.
많은 강박증의 원인이 ‘불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4살,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큰 불안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또래 무리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중학교 때는 언니들과 오빠들도 무섭게만 느껴지고 다른 여자애들과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통통한 편이지만 어릴 적 저는 살집이 많았으며, 다른 여자애들과 외모가 많이 비교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차별의식을 주변에서 많이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정해진 과제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못 간다는 교칙 때문에 두 달간 집에 못 간 적도 수두룩하니 그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봐도 가장 맥시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불안감에 따라 강박증의 증상도 도를 넘어설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된 이 증상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정도가 심한 상태로 이어졌다가 그 이후로 서서히 자연스럽게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부터 교장선생님이 제 사정을 알게 되시면서 다른 과제를 받아 집에 갈 수 있게 됐고, 교우 관계도 원활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점차 줄어들면서 학교에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정리에 집착하는 마음은 줄어들고, 좋아하게 된 다른 일들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된 거죠. 이렇게 보니 저는 이 시절 제가 놓인 상황이 너무 괴롭고 괴로워서 정리에 집착하는 걸로 그 무거운 시간을 견디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제 일상을 망친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던 건, 이거라도 미친 듯이 집착해야 잠깐이라도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고, 이거라도 해서 성취를 얻어야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빠와 살며 지금도 크고 작게 제 안에는 강박증과 같은 증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계획을 지키지 않는 아빠와의 약속에서 늘 실망하다 보니, 제가 세운 계획을 지키고 그대로 하는 것에 집착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이런저런 갈등도 있어서 지금은 대화로 잘 조율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안에는 계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이런 불안 증세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만큼 증상이 심해지지 않는 건 스스로 무엇을 할 때 즐겁고, 누구와 있을 때 행복하며, 나 자신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실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마음을 나누며 절 위해 기도해주고 제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죠. 여전히 문득 문득 불안이 절 삼킬 정도로 올라올 때는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불안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아주 소중한 것들이 내 곁에는 많이, 아주 많이 있다는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