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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Oct 30. 2024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무관심은 사랑의 반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는 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 안에 들어가 있다는 뜻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됩니다. 제 안에 있는 아빠를 향한 원망과 미움이 조금이라도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다고 한다면, 그것이 궤변이라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죄책감의 무게는 분명 덜어지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마음이 드는 저 또한 있습니다. 무관심은 사랑의 반대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못하는 제가 말입니다.

저는 아빠에게 무관심합니다. 그런 태도가 1년, 2년 이어지다 보니 그런 태도로 지낸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아빠가 갑자기 숨을 거뒀다는 연락을 받아도 눈물 한 방울 안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자주 듭니다. 이런 제 상태를 자각하고 심각성을 깨달은 건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넌 아빠가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하면 해 줄거야?”

당시 저는 무미건조하게 그래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습니다. 요즘 간 이식 수술은 비교적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안 해주고 평생 비난받는 것보다는 해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 한 대답이었죠.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그 현실은 제 앞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평생을 술과 담배를 달고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은 아빠의 건강 상태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60대에 들어설 무렵부터 심장, 간 등에 이상이 발견됐고, 현재는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진단받아 약을 복용 중인 상태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간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진단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여전히 약을 먹는 날보다는 술을 마시는 날이 많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아빠에게 간 이식을 해줘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그다음에는 간 이식을 해도 아빠는 또다시 술을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따라 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아빠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다음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죠. 이미 아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으니, 아빠가 갑자기 사라져도 제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아빠의 장례식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서있을 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문득 제 스스로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되도록 사람과 만나지 않는다. 둘째, 상대방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셋째,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저는 이 법칙을 아빠와 저의 관계에 철저하게 적용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빠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남겨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약속을 수도 없이 어기고 필요할 때 항상 가족의 옆곁 없었던 아빠. 가장의 역할을 외면한 채 스스로가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당연하듯 엄마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아빠. 가족에게 경제적 짐뿐만 아니라 마음의 짐까지 늘려가는 아빠.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실망하기만 하는 나날들만이 줄곧 이어져 왔습니다. 이러다간 아빠를 증오하는 마음만이 남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죠. 그래서 저는 미워하는 대신 아빠에게 무관심해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아빠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 대가로 아빠를 위해 슬퍼하는 마음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빠와의 관계를 더는 이어 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이 방법이 최선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일기도 제 스스로의 상태를 깨달으며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 자신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아빠를 바라봐야 할지를 정리하고 준비하기 위해서죠. 다시 과거로 가 이런 상태가 될 걸 알아도 저는 아빠에게 무관심해지는 걸 선택할 겁니다. 당시 어렸던 저는 아직 아빠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으니까요. 최대한 아빠에게 상처받지 않고, 아빠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아빠를 사랑했습니다. 

지금은 서서히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아빠를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하게 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겨우 무관심해지는 대신 아빠와 마주 볼 결심이 서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는 말이죠. 사랑하기 위한 준비까지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많이 길었지만 길었던 만큼 견고해졌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무관심해지는 걸 포기하면 분명 기대해서 실망하고 상처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바뀌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저의 최선의 사랑은 분명 무관심이었지만, 이제는 그 형태를 천천히 바꿔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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