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사제지간, 이웃, 직장동료 등 그 안에서도 참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족’이란 관계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오묘한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혈연으로 묶여진 관계. 같은 피가 흐르며 비슷한 유전자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 그것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맺어지는 인연 중 가장 깊고 끈끈하게 맺어지는 게 때때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고3 시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아빠와 저 사이에는 자주 갈등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떠받들어지듯 자란 아빠는 술을 먹고 나서 며칠은 눈치를 보지만 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대로 생활했습니다. 저와 엄마가 식사를 차려주는 것은 물론, 물이나 과일을 가져오라는 등의 작은 심부름까지 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항상 우선시돼야 했고, 아빠의 생각이 늘 맞다고 여겼습니다. 그 시기 아빠와 갈등이 있던 이유도 결국 제가 학교에 가기 전 20분간 TV 채널을 아빠가 마음에 안 드는 곳으로 돌렸다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그런 갈등을 자주 벌이다가 한 달에 3분의 2를 술에 취해 생활하는 아빠를 견디다 못한 저는 한 번은 아빠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엄마는 제가 진정되고 나서 방으로 데려와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렀습니다. 아무리 밉고 한심해도 아빠라고, 아빠가 없었으면 넌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요. 아빠가 있었으니까 제가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그 말에 아주 큰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낳기만 하면 끝이 아닌데 말이죠. 내가 태어나도록 해주고 나서 가족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가족’이라는 말로 묶인 사이에는 끊고 싶어도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끈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을 즐기고 싶어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아빠의 존재가 항상 아른거리고, 갈수록 술과 담배로 건강이 악화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게 생각되는 게 그 증거겠죠.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악한 걸 뺀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다 가진 것 같은 한 남자를 아빠란 이유로 완전히 저주하고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가족이라는 형태 묶인다는 것이 때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서운하고, 더 상처받습니다. 가족에게 기대고 싶기 때문이고, 기대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겠죠.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었다는 건 특별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족 중에서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깊은 인연이죠.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기에 더 쉽게 상처받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저의 가족인 아빠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이 일지를 시작한 것도 결국 그런 이유겠죠.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어집니다. 그게 가족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저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구성원 중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나아가려는 방향을 바꾸고 보폭을 맞춘다면 그 저주라는 동전의 뒷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