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그시 Oct 16. 2024

돈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당연하고 근본적인 욕구입니다.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없으면 문제지만 있으면 있을수록 삶의 질을 올려주니까요. 더군다나 물질만능주의의 지금 현실에서 돈은 분명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저를 비롯한 저희 가족은 돈에 대한 욕구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도 가족들 모두 제가 하려는 일을 응원해줄 뿐, 얼른 취직하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저희 가족이 안고 있던 문제는 가장의 부재였습니다. 가장의 역할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내적인 영역에서 가족을 지탱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빠가 하고 있는 역할은 그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예술가를 직업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이 팔릴 때만 수익이 생깁니다. 기본적으로 불규칙적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수익이 생길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작품 의뢰가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스스로 술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툭하면 의뢰와 관련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의뢰 계약이 중간에 파기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저희 가족의 경제적 형편은 좋지 않았고, 친척들이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생활해 나갔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생활비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저도 용돈을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가족이 바닥에 나앉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건 철저히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엄마도 일을 하고 있고, 저도 알바를 하고 있어서 아빠에게 생활비를 기대지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은 돈은 거의 없이 곧 30대가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노후와 내 노후는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우선 눈 앞의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TV나 SNS에서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다 보면 제 삶과 비교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 더 많으면 우리 가족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죠. 당장 취업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걱정도 뒤따라옵니다. 그럴 때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돈이 많았다면 아빠는 술을 안 마셨을까? 지금 돈이 생기면 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없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대답은 언제나 “그렇지 않다.”입니다. 지금 우리 가족이 품고 있는 문제는 돈이 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많이 생겨서 더 이상 가난에 허덕이지 않게 된다고 해도 아빠는 술을 먹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돈이 없어서 술을 먹는 게 아니니까요. 돈은 우리 가족의 본질적인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삶으로 체감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일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된 거였죠. 최근,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한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서였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늘 존재하는 환경에서 제가 터득한 건 돈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앞으로도 취업을 하지 않고 편하게 살 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왠지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제가 돈을 우선하는 사람이었다면,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아빠와 함께 살 수 없었겠죠.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가족 안에서 자랐다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을 이제까지 참 많이 배웠습니다. 그 사실을 자주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이전 19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머무르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