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레 들린 김에,
내 생일날, 집에 혼자 있기는 싫어서 밖으로 나가자, 했다.
어딜 갈까, 집 앞 카페에서 사색이라도 할까, 집 앞 시내 구경이라도 할까,
하다가 그것보다 조금 더 멀리 나왔다.
전 날, 엄마와 다퉜다. 다퉜다기보다는, 그것을 계기로 엄마를 향하던 작은 오솔길마저 문을 닫자, 했다. 상처가 나던 길에 다시 작은 위로들을 뿌려댔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공격에는 문을 닫아야지. 그 길은 다듬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래부터 그리 큰 길도 아니었어서, 그냥 불을 꺼 버리면 그만이었다.
조금 더 멀리 나가보자 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리라. 마침 봄바람도 좋았다. 경복궁역 부근에서 시작해 인왕산 정상으로 향했다. 월요일 이른 점심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도 않았고, 초입은 한산했다. 숨이 가빠오긴 했지만, 살아있음이 느껴져 발걸음을 쉬지는 않았다. 집에서 싸 온 가방 안의 동글동글 주먹밥은 나에게 잘도 힘을 주었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이 뿌듯했다. 바닥의 돌들을 세며, 땀 알의 개수도 세어졌다. 너는 이리 밟히지 말아라, 생각하며.
미세먼지는 나를 방해했다. 원래는 미세먼지도 끄떡없었더랬다. 올해부터 밖에만 나오면 코가 찡한 것이, 자꾸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흐른다. 그럼에도, 나는 호흡에 집중한다. 과거의 호흡을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미래의 호흡을 미리 할 수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호흡이다.
정상에 도착해 주먹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땀이 말라 추웠다. 올라온 시간 만큼은,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랫동안 정상을 누리고 싶은데. 원래 그런 법은 없다. 결과는 언제나 짧게만 빛나는 법이니까. 그래서 더 아깝고 아쉬운 것이다. 뒤이어 밀려오는 후발 주자들을 위해 정상을 내어줬다.
내려오는 길은 다른 길이었다. 나무 계단이 조금 더 많았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진달래꽃 옆에서 벌이 위잉 했다. 이제 벌이 꿀을 찾아 다니는구나, 달콤한 꿀을 생각하다 갑자기 내 침에 내 목이 켁 막혔다. 기침에 몸을 가누지 못해 나무 계단에 주저앉았다. 마치 목에 꿀 한 방울이 톡 들어간 것 같이, 목이 뻑뻑하고 간지러웠다. 목에서 단내를 빼내는 데 한참이 걸리더라. 마침 그늘이었고, 기침을 더 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도 앉은 김에 쉬어가자 했다.
기침이 멈추고, 눈 앞의 벌이 보였다. 꽃이 보였다. 위잉 탁, 벌이 날아가다 돌에 부딪힌다. 더 멀리에는 아파트가 있고, 산이 있다. 학교도 있고 사람들도 있겠지. 내가 올라온 산은 이제 내 등 뒤에 있다. 오늘 오른 산의 정상은 과거이다. 과거의 음미는 짧았지만, 내 등 뒤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가까운 미래가 있다. 내가 정복하게 될 길들도 조금만 지나면 내 뒤를 단단히 받쳐주겠지 했다.
기침 덕에 쉬어간다. 기침 덕에 산더미 같은 미래를 걱정한다.
오래 머물지 못한 것은 그늘이 추워서였을까, 쉬는 것이 영 불편해서였을까,
넘어지고 주저앉는 일 정도는 있어줘야 쉬는 줄을 알았다.
알이 배긴 종아리는 인왕산을 추억하게 하고, 때때로 막히는 기침은 쉼을 걱정하게 한다.
언제쯤 또 사레가 들리려나.
그때에는 벌이 꿀을 음미하는 장면까지 보고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