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에서 꺼낸 고운 미소
인사동, 고모의 전시를 보러 간 날입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의 시선이 담깁니다. 시선에는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 색들을 골라 쓰는 것은 예술가의 능력이겠지요. 개성이겠지요.
갤러리 앞에는 유명한 찻집이 있습니다. 쌍화차, 매실차, 국화차, 식혜...
유과와 매실차를 함께 시킵니다. 달고 씁쓸한 맛이 좋습니다. 어찌 살얼음을 그리 동동 띄울 수 있는지, 아주 완벽한 살얼음이 입 안을 차갑게 합니다. 녹아도 별 수 없습니다.
날씨가 짓궂습니다. 바람이 비를 뿌려댑니다.
하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년의 신사 분이 다가와, 카페 앞을 서성입니다.
하얀 옷은 마치 이불 같습니다. 아니, 좋은 솜으로 만든 요 같습니다.
정성스레 박음질한 하얀 실이 보입니다. 아, 앞에서 여닫는 것이 한복 같기도 합니다.
그 옷깃을 열어,
포근한 이불 속에서, 소중한 가슴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매만집니다.
곱디 고운 할머님은 또 오셨냐며, 부드러운 손길에 웃습니다.
할머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고,
할머님이 기억하는 것은 낡고 부드러운 손길이겠지요.
비바람에도 거뜬한 이불 속에서,
영원히, 꺾이지 않는 둥근 미소를 품고 계시겠지요.
하얀 수염을 쓱- 쓸어내리시고는 카페로 발을 옮기십니다.
한 품의 사랑, 그 매만짐은 한 채의 새하얀 솜이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