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피구공은 오지 않았다

열 살의 눈물이, 열아홉의 감사가 되어 돌아오다

by 디바인힐러


그 아이는 피구공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다고 울었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체육 시간.
아무도 그 아이에게 공을 주지 않았다.


작은 어깨는 점점 구부정해졌고, 끝내 눈물을 삼키지 못했다.


그날 나는 말했다.
"괜찮아, 선생님이 널 보고 있었어."


“누군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
그건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야.”

그 아이는 유난히 그림을 좋아했다.
초록색 뱀을 진지하게 그려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림 하나에, 마음 하나를 걸던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아낌없이 건넸다.


아이의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을 꿰매어 안아줄 수는 있었다.



감정의 불안, 그러나 멈추지 않은 수업


성아는 쉽게 흔들렸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서툴렀다.


하지만 나는 수업을 멈추지 않았다.
지적보다 칭찬을 먼저 건넸고, 불안보다 가능성에 먼저 주목했다.


잘하는 순간이 포착되면 곧장 말해주었다.
“지금 너무 잘했어.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표현이야.”


그렇게 아이의 표정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록빛 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미술 시간이었다.

성아는 정갈한 자세로 하얀 도화지 위에 초록빛 뱀을 그렸다.


그건 단순한 뱀이 아니었다.

초록을 중심으로 붉은빛이 섞인 비늘, 정교한 곡선, 또렷한 응시.


그림은 마치 말하지 못한 감정을 시각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나는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아, 이 그림 선생님한테 선물해 줄래? 선생님, 이걸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싶어.”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그날 이후, 성아는 그림으로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빗속, 교실을 벗어난 관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신발 벗자. 흙을 밟고 맨발로 달려보자.”


아이들은 잠시 머뭇였지만, 곧 빗속으로 달려 나갔다.

함께 뛰고, 소리 지르고, 웃고, 넘어지고—우리는 그날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날 이후, 성아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불안하던 눈빛엔 웃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실을 따스하게 채우던 또 하나의 아이, 시연이


그 반에는 또 하나의 따뜻한 이름이 있었다. 모범생 예쁜 시연.

웃음이 많았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으며, 정리정돈도 스스로 해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친구들을 조용히 도우며, 손을 내미는 법을 알고 있는 아이였다.


어느 날 시연이 어머니가 말했다.

“선생님을 만난 건 우리 가족에겐 기적 같은 일이에요.

아빠도 꼭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말은, 내 마음 어딘가 깊은 곳에 조용히 따뜻하게 새겨졌다.



스승의 날, 돌아온 초록 뱀의 기억


올해 스승의 날,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성이입니다. 곧 성인이 됩니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도 미술이라는 꿈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때의 그림 한 장이, 지금 제 삶을 만들고 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곧 도착한 그림 한 장.

섬세한 색감과 단단한 선, 불안 대신 집중이 담긴 눈동자.


그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자기 안의 세계를 꺼내어 그려낸, 한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림 한 장이 만든 길


나는 휴대폰을 들고 한참을 말없이 웃었다.

지금의 성아는, 이미 청년이었다.


그림 속 초록뱀은 더 이상 불안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건 방향이었고, 언어였고, 미래를 향한 몸짓이었다.



마지막 인사, 그리고 다짐


나는 말했다.

“짜장면 사줄게. 마음이 무거운 날, 언제든 오렴.”


아이는 잠시 후 답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할게요.”


나는 안다.

한 줄의 칭찬이, 한 아이의 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교사라는 이름은, 그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깊은 상처는 흔적이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그 자리를 기억하며 걸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흔들려도, 그 방향만큼은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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