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계절을 닮은 기억이다.
6월의 햇살이 피어오르지만,
나는 여전히 11월의 그림자 속에 있다.
죽음은 여름에 왔고, 생일은 겨울에 남았다.
계절은 흐르되, 기억은 제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계절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슬픔이 다시 숨 쉬는 구조이며,
기억이 침묵 위에 꺼내놓은 또 하나의 몸짓이다.
삶은 흐르지만, 상처는 계절에 머문다.
차량 USB에서 흘러나오던 이문세의 ‘옛사랑’.
그날따라 유난히 낮게 깔리던 전주.
늘 추억이었지만,
그날은 예고되지 않은 슬픔의 서곡처럼 다가왔다.
공원묘지에 도착했을 무렵,
30년을 함께한 운전대는 내 손을 벗어났다.
차는 솟구쳤고, 어둠 속으로 수직 낙하했다.
3층 높이의 추락. 그리고 정적.
차가, 내 위에 있었다.
차체는 앞뒤로 압착돼 있었다.
남겨진 틈은 단 한 뼘.
나는 그 틈을 지나왔다.
“0.5cm만 더 압착됐어도 구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급대원의 말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의 선명한 언어였다.
그날, 나는 살아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아주 가까이 두고 돌아선 것이었다.
외상은 없었다.
그러나 내면은 무너져 있었다.
손가락은 부러졌고,
등에서는 척추 수액이
소나무 진처럼 흘러내렸다.
고통은 조용했고, 그래서 더 깊었다.
병실 안에선 고요만 맴돌았고, 고통은 대화 없이 내 안에 가라앉고 있었다.
며칠 뒤, 병문안 온 주영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문화 가정의 작은 소년.
쑥스럽지만 단단한 눈빛으로 말했다.
“선생님, 성어가 선생님 기다려요.
많이 힘들어해요.”
그 한마디는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척추 세 개의 절단, 삶의 균형도 무너졌다
척추는 옥수숫대처럼 부서졌다.
신경줄은 고통의 실타래처럼,
나를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었다
의사는 네 달간의 입원을 권했지만,
나는 다섯 번째 날, 퇴원을 요구했다.
“아픈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자꾸 웃어요?”
의사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살고 싶어서요.”
“몸이 부서졌을 땐 정신이 의지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영혼이 부서졌을 땐, 단 한 사람의 말이 생명을 복원한다.”
그 자신감은 무모했지만,
무모함은 때로 생존 본능보다 더 단단했다.
나는 재가 되기 직전의 심장에서
다시 살아났다.
대체의학으로 익힌 회복의 감각은
회복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고,
그 단축된 시간은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두 달 동안 나는 눕지 못했다.
요가볼 큰 공에 몸을 기대 잠들었고,
실리콘 보호대를 두르고
다시 교단에 섰다.
그 행보는 누군가에겐 무모함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통증보다
아이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이제, 11월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반복되는 상처이며,
다시 살아남았음을 조용히 증명하는 시간이다.
바람이 불고, ‘옛사랑’이 라디오에서 흐르면
나는 창밖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가 말한다.
“살아 있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구나.”
나는 안다.
깊은 상처는 흔적이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그 자리를 기억하며 걸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흔들려도,
그 방향만큼은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