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체온이 김 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김밥, 기억의 김밥》
──
엄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손끝은 항상 나를 향해 있었습니다.
김밥 한 줄, 참나물 하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
엄마의 김밥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엄마처럼 흉내 낸다
내 삶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김밥 한 줄의 추억’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그리움이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나를 감싼다.
단무지를 꺼내고, 시금치를 데치고,
계란을 부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엄마는 이럴 때, 뭘 먼저 넣으셨더라.”
김밥 한 줄은 내게 요리가 아니다.
그건 엄마라는 사람의 체온이며,
나를 향한 사랑의 구조이자 기억의 형태다.
엄마는 특별한 레시피 없이도
늘 같은 맛, 같은 온도로 김밥을 만들어냈다.
단단하고, 푸근하게.
그리고 그 맛은 매번, 마치 약속처럼 되살아났다.
묵은지로 김밥을 말았다, 엄마 생각이 나서
그날은 유난히 엄마 생각이 났다.
냉장고 속 묵은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김 위에 펼쳤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엄마를 흉내 내고 싶었다.
맛은 닮지 못했고,
모양은 어설펐으며,
썰다 보면 금세 으스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말고 싶었다. 엄마처럼.
김밥을 자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엄마 곁에 있는 듯했다.
“흉내란, 가장 진심 어린 그리움의 형식이다.”
— 발터 벤야민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거 엄마가 어릴 때 먹던 김밥 맛이야?”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나는 한 줄의 김밥으로
엄마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기억은 어느새 딸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집밥’이란,
단지 음식이 아니라,
그리움의 형체요, 기억의 문법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지만, 사랑은 구조를 바꿔 전해진다.”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김밥은
내가 엄마를 추억하는 방식이고,
이제는 딸에게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엄마처럼 김밥을 흉내 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또다시 김밥을 만다.
봄에는 냉이를 넣고,
여름엔 오이와 당근을 곁들이고,
가을엔 도토리묵을 더하고,
겨울엔 김을 구워 따뜻하게 말아낸다.
매 계절의 김밥은,
엄마의 계절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사람들은 김밥을 간편식이라 말하지만,
내게 김밥은
사랑을 꾹꾹 눌러 담은 ‘삶의 조각’이다.
엄마가 김밥을 말던 그 손끝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김을 펼친다.
“무심한 반복 속에, 가장 애틋한 의미가 깃든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리움은, 말아야 풀린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자주 김밥을 말아요?”
나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속재료를 꺼내고
김을 펼치며 조용히 말한다.
“그리움은, 말아야 풀립니다.”
오늘도 나는
김 위에 그리움을 얹고,
엄마라는 사랑을 말아간다.
모양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은
형태를 넘어, 기억으로 남는다.
“음식은 혀로 기억되지 않는다.
사랑의 방식으로 기억된다.”
— 고대 로마 격언
‘엄마의 김밥’은
더 이상 부재의 대상이 아니다.
그건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이며,
내가 다음 세대에게
사랑을 말아 전하는 방식이다.
나는 안다.
그 김밥 속에는
언제나 ‘엄마’라는 이름이 감겨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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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인힐러 | 하루의 마음을 조용히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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