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대신, 나에게 쓰는 가장 조용한 다짐
어느 봄날이었다.
내장 깊숙이 들이 앉은 묵직한 침묵.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존재가 스스로 발신한 조난신호였다.
불편한 마음의 조짐은,
사실 몸이 먼저 감지한 예감이었다.
병원을 찾았고,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검사를 요청했다.
그 작은 결정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유방암 3기입니다."
그 한 문장이 나를 침묵의 강으로 밀어 넣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과,
미치도록 살고 싶다는 열망 사이.
나는 그날, 두 마음 사이에 서 있었다.
“왜 하필, 나입니까?”
그 말이 병실 창가에서 흘러나왔다.
믿음마저 흔들리던 그 순간.
하늘을 향한 질문은 허공에 부딪혔다.
공허한 침묵만이 돌아왔다.
나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항상 어른의 마음을 먼저 살폈고,
늘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실한 자일수록 자기 자신에게 잔인하다.”
— 카뮈
그런 내가 왜 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침묵 속에서,
내 안의 오래된 기억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울고 계셨다.
그 눈물은 언어 이전의 언어였다.
말보다 선명하게,
모성이라는 이름의 무언의 칼날이
내 가슴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내가 아플 수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사랑이란, 말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내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안타까움은 매년 봄이 올 때마다
파김치 냄새처럼,
기억이라는 통로로 내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암 선고를 받은 날 밤,
나는 유서를 썼다.
통장을 정리하고,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살아내고 싶었다.
나는 책을 읽었다.
몸의 언어, 항암의 한계, 식이요법,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이라는 장을 탐독했다.
밤마다 나는 살고자 했고,
또 체념하고 있었다.
희망과 포기 사이를 오가는 외줄 타기 같았다.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본원으로 병원을 옮겼다.
더 나은 치료, 더 확실한 선택.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찜질방이라는 곳에 들렀다.
뜨거운 온기가 피부를 덮던 순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 몸은, 내 마음은
얼마나 오랫동안 따뜻함을 갈망해 왔던가.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고,
학교, 병원, 시댁, 육아
나는 늘 누군가의 필요에 응답하며 살아왔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한 번도 품에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삶은 온기를 미루고,
타인을 먼저 데우느라
나는 매 순간 식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준비하며,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마주했다.
그동안 외면해 온 ‘살고 싶은 나’를.
엄마의 삶, 내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중도에 멈췄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대체의학으로, 자연의 리듬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나는 살아내기 시작했다.
“진짜 용기란, 죽음에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다시 발을 디디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느 봄날처럼
삶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
죽고 싶은 날에도,
살고 싶은 마음은 존재한다.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살렸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여기에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드릴 수 있기를.
그렇게,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꼭 다시 전하고 싶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삶은, 내면 깊은 울림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시작된다.”
— 칼 구스타프 융
“당신이 가장 어두운 순간에 만난 목소리가,
당신을 가장 빛나는 곳으로 이끈다.”
— 소렌 키에르케고르
그 부름 앞에서,
나는 멈추지 않고 살기로 선택했다.
이제는,
나를 살린 그 ‘또 다른 나’와 함께
내 삶을 다시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