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새긴 백 년의 무늬
백 년 전의 세상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백 년 후의 세상에도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우주의 시계로 보자면 나의 생이란 그저 눈 깜빡임 정도의 찰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아득한 시간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늘’이라는 기적 같은 시간 위에 나는 발을 딛고 서 있다.
나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들꽃과 들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 모를 풀꽃 하나도 나처럼 이 세상에 왔다가 나처럼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허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떠난 뒤 남겨질 타인의 기억은 엄밀히 말해 나의 세계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머물며 보고, 느끼고, 때론 즐겁고 괴로워했던 그 직접적인 감각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진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생은 충분히 완결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으려 애를 쓴다. 손안에 쥐면 영원히 내 것이 될 줄 알았던 기쁨들은 그러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고, 쌓이지 않은 채 사라졌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우며 익숙한 생각들을 뒤집어보고 고르고 골라보아도, 결국 얻은 것은 잊히고 잃은 것은 덮이는 것이 삶의 담담한 이야기였다.
젊음도 사랑도 물 위에 뜬 나뭇잎처럼 위태로웠지만 그것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흔적들이 모여 비로소 떠내려가지 않는 견고한 '세월'이 되었다.
아침 햇살을 맞이하고 저녁 달빛을 눈에 담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루만 산다고 해서 해가 땅콩만 하게 작아 보이지 않으며, 수만 날을 보았다고 해서 해가 호두만큼 커지지도 않는다.
해와 달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크기로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루살이가 마주한 햇살과 내가 누리는 달빛은 그 무게가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뿐이다.
내일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안갯속에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존재함’이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껴안는 일이다.
삶은 결코 길이로 재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보다,
그 허락된 시간 속에 얼마나 깊은 무늬를 새겼느냐가 중요하다.
백 년이라는 광활한 틈새에서 내가 새긴 오늘의 깊이가 곧 나의 온 우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