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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05. 2022

40일의 발칙한 아내

메타버스에서 맺은 사랑이 현실이 된다

40일의 발칙한 아내. 한지수 저. 2018.03.22. ㈜문학사상. 303쪽.


  요즘 결혼을 포기하거나 안 하기로 작정한 미혼 남녀를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 환경문제,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담 등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고 가정이라는 느낌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가상 결혼을 하고 가상의 부부생활을 하는 내용이다.

 

  제목 ‘발칙한, 40일, 아내’라는 단어에 그저 블랙코미디 로맨스 정도로 추측했다. 내 생각은 빗나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슬픈 내용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고 실제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체험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사연을 체험하기 위해 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쓰고 복역한 실존 인물의 아들을 인터뷰했고, 인터뷰 내용을 소설의 내용 중에 인용하였다. 그래서 실감 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나 보다.


  좀 쉬워 보이는 형사와 기러기 아빠, 외제 자동차 딜러, 프랑스 파리 거리의 화가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간다. 애틋한 사랑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표현에는 음악이 제격이다. 임태경이라는 가수가 부른 ‘옷깃’의 가사를 인용한다. “저 바람은 한숨 되고 햇살은 눈 시리죠.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이 그댄 떠났다고 하네요. 그대 안에 내 모습 재가 되어 날려도 고운 손등 위에 눈물 묻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눈에 영상이 나타난다. 소설을 쓰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쓰고 복역하는 동안 성인이 된다. 여자 주인공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만드는 고문 기술자의 딸이다. 기구한 운명의 만남을 시인의 시로 대신한다. 문계봉 시인의 ‘11월’이라는 시 전문을 인용한다. “손님처럼 머물던 11월이 하루가/ 흐린 얼굴로 떠날 때마다/ 헤어짐을 겨워하는/ 가을의 울음소리 사방에서 들려왔다./ 잎을 잃은 나무들의 건조한 樹皮 위론/ 위로 같은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모든 기억이 아름답진 않지만/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은 기억이 된다/ 가을에게도 기억해야 할/ 아름다움은 이을 것이다/ 모든 이별을 만날 때마다/ 가장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 위해/ 가을은 지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내 생의 한편에서도/ 이별은 분주하게 진행 중이다.”


  그녀가 바꿔놓은 풍경들을 생각했다. 그녀를 만난 후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고, 거리와 사진이 바뀌었고, 세상으로 통하는 길마저 바뀌었다. 지금, 이 시간과 앞으로 이어질 내 생의 지도조차 그녀로 인해 변경된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만남으로써 이렇게 바뀐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서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신은 고동이나 달팽이처럼 암수를 한 곳에 묶어두지 않고 따로 떼어놓아 이렇게 서로 만나기를 애타게 하고 만나서 갈등을 만들게 한 것일까? 인생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6인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침대는 수시로 주인이 바뀐다. 오늘 들어온 사람이 계속 있을 수 있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대에 드러누워 무엇을 기다릴까?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삶도 집에 있다고 다를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삶이 어느 곳에 있든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흔적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있을 법한 이야기, 요즘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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