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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Feb 04. 2023

캐럴라인 냅 지음.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이 책의 부제목은 ‘여성은 왜 원하는가’이다.


저자 캐럴라인은 20년 가까이 시달린 알코올의존증을 고백한 『드링크, 그 치명적 유혹』을 썼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유려하게 써나간 생애 마지막 책으로 폐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녀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고 책 머리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세상의 많은 여자처럼 자기 가치에 대한 의식과 호감을 얻는 능력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자신이 가치 중 큰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양분을 공급하는 일에서, 다시 말해 갈등을 피하고 자신이 필요와 실망은 감춰둔 채 남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서 올 것임을 이해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게 새겨진 그 감각들은 유전자 속에 심어진 것처럼 거의 물질적인 방식으로 계속 삶을 이어간다. 어머니의 태도는 늘 예외 없이 예의 바르고 절제되어 있었으며 타인들을 향해 있었다. 라고 고백한다.     


저자는 거식증으로 인해 스물한 살에 162센티미터의 키에 37킬로그램의 몸무게였다. 3년 동안 매일 같은 것을 먹었다. 아침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참깨 베이글 하나, 점심은 다농에서 나온 커피향 요거트 한 개, 저녁은 사과 한 알과 작은 치즈 큐브 하나였다. 그리고 작대기 같은 몸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몇 킬로미터씩 달렸다. 여름에도 추위를 탔고 지독히 암울했으며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굶기 강박은 어디서 생겨나 이리 몰아대는지, 그 강박이 자신에 관해 혹은 여자들 전반에 관해, 혹은 인간의 갈망이라는 더 큰 문제에 관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행동하고 반응했다고 한다.     


뉴욕의 정신분석가 루이스 캐플런은 “여자들은 선택할 것이 무한하다. 그리고 이는 매우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당신이 자기라는 존재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경력을 추구할지, 머리카락을 어떻게 자를지 아무도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당신이 의지할 사람은 당신 자신밖에 없다.” 선택할 자유는 바꿔 말하면 실수할 자유, 더듬거리다 실패할 자유, 자신의 결점과 한계와 두려움과 비밀과 정면으로 대면할 자유, 자아의 파괴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끔찍한 불확실성을 견디며 살아갈 자유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로 살았지만, 쌍둥이 언니가 마흔한 살이 나이에 자연 출산 방식으로 딸을 낳는 순간을 지켜보고, “탄생이란 정말로 자연의 가장 특별한 위업이기 때문이고,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그때만큼 깊은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창조하는 몸, 생명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그 생명을 자신의 생명줄과 수액으로 된 망으로 품고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고 이어서 세상으로 내보내 인간의 삶 자체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지식과 기가 막힌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의 몸, 언니가 대단한 집중력과 우아함으로 이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자궁을 벗어난 최초의 순간의 아기-작지만 완벽한 모양을 갖춘 귀와 손톱과 발가락, 그 완벽하게 복제된 존재-를 지켜보는 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새로운 생명의 약동하는 힘과 잠재력을 느끼고, 인류 자체의 잠재력을, 삶을 살아갈 잠재력을 느끼는 일. 우리 각자가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닿아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그리고 이 기적이 모두 한 여자의 몸 안에서 시작되어 한 여자의 몸에서 솟아나는 일이라는 숨 막히게 감동적인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안겨주었다.”라며 그와 더불어 특별한 아이러니도 안겨주었다고 한다.

*페미니즘-남자, 여자 구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 양성평등을 주장하지만, 여성중심사회를 추구한다.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고, 가부장제의 철폐와 성차별의 타파, 여성의 성적 자율권과 주체성 확보 등을 중심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요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떠나 새로운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아기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책 소개     

욕구들. 캐럴라인 냅 지음. 2021.05.17. ㈜북하우스 퍼블리셔스. 399쪽. 18,000원.

  

캐럴라인 냅 Caroline knapp. 1959~2002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 보스턴 비즈니스 저널, 보스턴 피닉스, 살롱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2002년 4월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은 뒤 오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마크 모렐리와 결혼했으며 그해 6월 세상을 떠났다.     


정지인. 전문 번역가.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공부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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