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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Feb 17. 2023

레이첼 커스크 지음 『윤곽』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이 책은 저자가 10년간의 결혼과 이혼의 아픈 경험을 솔직하게 담은 회고록이라는 점에 더 끌려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작가의 성장 과정이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특별한 경험이 이 소설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부제목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이 붙었다. 소설은 아홉 개의 단락으로 화자가 그리스에서 여름학기 동안 글쓰기 강좌에 강사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옆자리의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서 체류하던 아파트를 떠나기 전에 새로운 체류자가 와서 대화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세밀한 부분을 묘사한다. “그는 등산 중에 뒤를 돌아보는 등산객처럼,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살폈다. 더 이상 올라가는 일에만 마음을 두지 않았다.”     


  화자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결혼, 가정, 이혼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곳곳에 첫 결혼을 유지하지 못한 아쉬움과 상실감이 묻어난다. 결혼과 가정의 안정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화자의 대화를 통해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더 이상 내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란 어떤 맥락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테고, 나는 그런 맥락들을 완전히 떠나버렸으니까”     


“평화가 전쟁이 될 때, 사랑이 증오로 바뀔 때, 무언가가 세상에 등장하게 마련인데, 그건 유한성이 지닌 순수한 힘이었다. 사랑이 우리들을 무한한 세계에 붙잡아둔다면, 증오는 그 반대였다. 놀라운 점은 증오는 아주 세세한 것들에까지 미치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남편의 행동에 대한 실망,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     


“아내와 함께 만들어왔던 가정이라는 어떤 안정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실의 풍경에서 지리적으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 곳에서 멀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남편의 부재는 중심점, 그것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의미가 없는 그런 중심점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자와 여자가 두 개의 축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구조, 형식이었다. 그녀는 그 구조가 사라진 후에야 그것을 실감했고, 그 구조, 평형 상태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마치 이후에 터진 극단적 사건의 원인인 것만 같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일일 곧장 다른 남자에게 공격당하는 일로 이어진 것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질문만을 던지고 해법은 말하지 않는다. 결국 정답은 없는 것이 인생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소개


레이첼 커스크 지음 『윤곽』 , 김현우 옮김. 2020.08.10. ㈜도서출판 한길사. 15,500원.

   

레이첼 커스크(Rachel Cusk) -1967년 캐나다에서 출생,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후 1974년 영국으로 이주,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첫 소설 [아그네스 구하기] 등 이후 휘트브레드 신인소설가상, 서머싯 몸상수상, 오렌지상, 매부커상 후보 등 2003년 그란타 매거진이 선정하는 ‘영국 초고의 젊은 소설가’로 뽑혔다.     


김현우-연세대 영어영문학과졸,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EBS PD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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