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May 12. 2023

정찬 소설집. 『새의 시선』

적당한 두께의 소설책을 찾다가 선택한 책이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공포감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자주 들었다.     


책을 읽고 난 후 기분은 찝찝함, 과음으로 인해 다음 날 불편한 속과 개운치 못한 두통 같은 느낌이 들었다. 7편의 단편을 연재소설 같은 느낌으로 싣고 있다.      


「양의 냄새」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도박하는 영화배우를 연구하는 정신분석가의 이야기다. 사람은 동물 가운데 표정을 가장 풍부하게 짓는 존재다. 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만 개가 넘는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으로 표정에 제한이 가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위축되어가다가 어느 시점부터 사람의 얼굴이 가면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면의 얼굴은 마음을 숨길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마음의 상태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카지노는 가면을 벗기는 공간이다. 일상 세계가 아니고 놀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놀이의 세계에서 가면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이다. 사람의 민얼굴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카지노인 것이다.    

 

배우는 맡겨진 역할에 따라 연기한다. 훌륭한 연기를 위해서는 배역 인물과 같아지는 것이다. 영화배우로 살아오면서 사악한 인간, 슬픈 인간 등으로 변해야 했던 화자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숨을 거두는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이른 나이지만, 그의 얼굴은 수많은 생의 겹에 싸여 백 년을 넘게 산 늙은이처럼 보였다. 죽음이 어쩌면 그에게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새의 시선」

사진작가 박민우는 특전사 동기며 친구인 윤기훈의 부탁으로 2006년 1월 19일 철거민 농성장에서 벌어진 용산참사 현장에 채증요원으로 투입되고 그곳에서 참담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근육무기력증 이라는 질병에 걸려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42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다.      


책 중 화자는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우주 공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낯선 대상이 되어버린 그전의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강렬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검은 물처럼 일렁이는 의문 속에서 나는 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새의 시선이었다.”라고.     


「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길」 「등불」은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다. 딸을 잃은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홀어머니, 그리고 제주도 모슬포가 고향인 식당 주인 여자와 젖먹이 아이가 침몰된 세월호에 타게 된 사연과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다.     


「카일라스를 찾아서」 열일곱 아들이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운전한 친구는 살아났다. 그리고 그 아버지들이 티베트 히말리아산 카일라스를 찾아간다. 아들이 살아있는 아버지, 아들이 죽은 아버지가 동행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죄책감, 죽은 사람의 안타까움 모두가 부처의 눈에는 한 줄기 구름인 것을.


「플라톤의 동굴」 몇 달만 참으면 박사학위를 받아서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데 소설가가 되겠다면서 중도 포기한 남자의 이야기다. 유학 당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5년만 참으면 소설가로 성공해서 잘 살자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결국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이 된 남자는 연극 무대에서 자살한다.      


이 책의 단편 소설은 따로 인 듯, 같은 듯 구분이 안 된다. 그러면서 일관된 내용은 주인공 화자가 선택하는 마지막은 자살이다. 이런 우울하면서 기분 나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다. 겨우 읽었다.     


책 소개

정찬 소설집. 『새의 시선』 2018.05.11. ㈜문학과지성사. 259쪽. 13,000원. 

    

정찬.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 등단했다. 동인문학사, 동서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찬국 지음.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