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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May 20. 2023

김운하 지음. 『선택』

노력하는 방황〈배반인문학 시리즈〉

이 책의 부제목은 ‘노력하는 방황’이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배반인문학’은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 인문학’의 줄임말이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와 공동 기획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매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운전하고 있다면 가속 패달을 언제 밟을 것인지, 브레이크를 언제 밟을 것인지, 속도는 얼마나 낼 것인지 등등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미국 소설가 존 바스의 허무주의적인 블랙코미디 소설 《여로의 끝》에 주인공 ‘제이콥 호너’의 ‘선택불능증’을 소개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제이콥 호너처럼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기이한 선택을 한다면, 각 개인의 삶뿐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선택이 우리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점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은 한정되어 있다.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 또한 무한정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많은 선택상황이 순간적인 결정을 요구한다. 이런저런 갑작스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충동과 감정에 휩싸여 두고두고 후회할 나쁜 선택을 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선택의 관점에서 우리 존재와 삶을 관찰할 때, 삶이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수수께끼들에 접근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는 근본적인 아이러니가 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꿈꾸는 목표나 대상에 대해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욕망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도 않고서 로맨틱한 사랑을 갈망하며,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결혼한다. 그것은 마치 운전면허는커녕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 본 적 없는 상태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한국 사회의 가치관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예전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당연한 삶의 시나리오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구나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결혼하여 가장으로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했고 여자는 결혼과 함께 남편을 내조하여 자녀 양육을 비롯한 가족생활을 이끌어가야 했다. 결혼하면 좋든 싫든 끝까지 살아야 했고, 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가 늙으면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였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것이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 문제가 되었다. 결혼, 취업 이혼, 재혼 등 갊의 각 단계에서 선택하는 기준 자체가 개인의 몫이 되었다. 삶의 의미는 어떤가. 세계와 삶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던 공통의 가치관이 사라져버린 이래, 사람들은 근본적인 무의미함을 고민하게 되었다. 우주 전체가 그저 에너지나 원자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생물의 존재 또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면, 도대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나?


결국 오늘날 우리는 삶의 의미란 것, 역시 인간이 부여하는 주관적인 것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내가 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목표와 가치는 개인적인 행복인가, 아니면 삶 전체를 그것을 위해 헌신해야 할 이상이나 신념인가? 이제는 이런 모든 근본적인 질문들에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선택의 자유가 양보할 수 없는 인격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무거운 무게이자 짐이 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에 평균 약 150번 정도의 선택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사소하고 자잘한 것들이겠지만, 한 달에 적어도 몇 차례는 중요하고 진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선택은 실천적인 문제이다. 하루하루 우리가 영위해 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항상 특정한 시간과 공간,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중요한 선택상황에서 무엇을, 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당신은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 아니면 실제로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직면하는 각각의 선택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선택의 주관적 측면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원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과연 스스로의 욕망과 소망, 재능이나 능력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삶에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하는 저격수 같은 무수한 불행과 고통, 재앙들이 도사리고 있어 우리를 덮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어떤 지혜로도 그것을 간파할 수 없다면, 도대체 우리의 삶과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은 다 무엇인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시간과 운명 앞에서 이토록 무기력한 것이 인간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며 몸부림쳐도 패배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선택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가 당황하는 이유는 우리가 매 순간 맞닥뜨리는 선택상황이 늘 생애 최초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직면한 선택의 상황은 대부분 모호하고 복잡미묘한 ‘근본적이니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삶의 세계는 무수한 가능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현재 상황이 함축하고 있는 미래의 모든 가능 세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 현재 상황은 너무 많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미래에 들이닥칠 우연이란 변수들까지 고려하면, 미래를 완전하게 예측하는 건 인간 지성 너머의 일이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의미가 있든 없든 간에,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잠재력들을 삶 속에서 그것을 실현하길 원하고 추구한다. 설사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삶을 이길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세운 비전과 목표를 향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가진다.      


시간과 운명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인정사정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예고도 없이 우리를 깔아뭉갤 수도 있다. 의도와 결과가 기대처럼 잘 일치하면 좋겠지만, 삶과 인과법칙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살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예비해두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선택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지만, 그 선택들이 빚어내는 총 결과는 운명의 몫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열심히 사유하고 열정과 헌신을 다해 노력하는 한, 우리는 그런 노력하는 방황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은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다른 시리즈도 읽어야겠다.    

      


책 소개     

김운하 지음. 『선택』 2014.01.29. ㈜은행나무. 155쪽. 9,900원.

     

김운하. 소설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공부. 『죽은 자의 회상』으로 소설가로 등단.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문화연구와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등 인문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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