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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n 05. 2023

최은영 소설. ‘밝은 밤’

나는 좀 게으른 버릇이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특히 그렇다. 

읽을 책을 진열된 서가에서 찾지 않고 ‘반납하는 서가’에서 고른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라는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고 책 고르는 시간이 절약된다. 

이 책도 반납 서가에서 선택하였다.     


소설은 거의 100여 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 강점기에서 현재까지이다. 

가부장적인 시대 천주교를 믿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그 딸의 딸, 그리고 딸의 딸 4대에 걸친 이야기다. 시대의 변천사와 생활 방식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서른두 살 이혼녀이며 천문대 연구원인 화자의 증조할머니는 그녀가 살았던 시절 최하층민 ‘백정’의 딸이었다. 여자의 미덕이 복종인 시절이었다. 부당함에 항의할 수도 없다. 때리면 맞고, 여자라는 존재는 미물과 같은 시절,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 약한 존재인 그들이 서로 미워하고 괴롭히는 이야기 흔히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화자의 엄마는 ‘평범한 가정’을 염원한다. 그래서 참고, 참고 또 참는다. 이혼을 결심하고도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딸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라고 이혼했다. 엄마는 딸의 편이 아니라 사위 편을 든다. 딸은 그런 엄마가 밉다. 화자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 증조할머니 대대로 딸과 엄마 사이에 ‘미움’이 앞선다. 참고 사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때문이다.     


소설가는 영혼을 이어준다는 ‘영매’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한다. 책에서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남편이 돈벌이하러 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마음들, 그렇나 무사히 돌아왔지만, 원자병으로 힘든 남편과 그 힘든 상황을 지켜보는 이웃들의 마음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무고한 생명이 죽는 처참한 광경에 천주님은 무엇을 했냐고 절규하며 독실한 신앙심을 의지하고 살아온 삶을 부정한다.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괴롭다.     


100년의 세월에 다양한 광경이 펼쳐진다. 암 투병하는 엄마의 모습, 유기 동물, 같은 환경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한 사람은 평범한 노인, 한 사람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가는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현실이 어떻든 사람의 마음에 공통된 하나는 ‘사랑을 갈구하고 외로움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하든 특별하든 사람의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은 같다. 사랑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는 것.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 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정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책 소개     

밝은 방. 최은영 지음. 2021.07.13. ㈜문학동네. 343쪽. 14,500원.

     

최은영.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허균 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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