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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n 16. 2023

알렉세이 바를라모프 지음 『탄생』

러시아 작가의 소설

 이 책은 러시아 작가가 쓴 것이라서 그런지 톨스토이, 고리키 같은 문호들이 연상되어 읽게 됐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소설 읽는 것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빌려왔는데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다 덮어버린 경험이 꽤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었다. 사실적인 묘사가 계속 나를 붙잡았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어서 손주들이 태어나도 막연한 느낌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기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구체적으로 느꼈다. 


주인공이 결혼 12년 만에 가진 아기, 애정없이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부부관계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임신에 대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임신 7개월 만에 조산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실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여자란 이렇구나.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도 이랬겠구나...” 

섬세한 여성의 심리와 임신을 통해 변화하고 육아를 통해 세심한 부분을 그리고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 과정을 미약하나마 느끼게 됐다.     


  남편에서 아버지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표현도 돋보였다. 동서양 불문하고 남자들이란 그저 무심하고 염치없는 동물? 들인 것 같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 아기를 안심하고 낳을 수 있는 장치가 아프면 치료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것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느끼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표현도 동감하였다. 오랜만에 감성이 살아난 느낌이다.     


  작가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의 남자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와 결혼한 것은 가장 큰 실수이자, 오늘 밤까지 이어지는 그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만약 이 여자가 그를 떠났다 해도, 그녀를 대신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했다.     


  조산한 아기가 생명을 이어나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가는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처음 일 분, 처음 한 시간, 처음 하루, 처음 한 달 그리고 처음 한 해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역으로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순간도 마지막 한 해, 한 달, 하루, 한 시간, 일 분이 가장 중요한 고비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코로나 시대라서 그런지 책 중에 “자연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할 일을 해낸다. 

이에 불만을 표출하거나 잘못한 사람을 찾는 것은 인간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지진, 화산 폭발 혹은 눈사태에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어떤 질병이든 어떤 바이러스든 개체수를 조절하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지금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도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개체수를 조절하는 수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사람이 세상에 나오고 세상을 떠나는 이 두 가지는 가장 큰 신비로움인데, 인간이 이걸 알아낸다거나 더욱이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     


지긋지긋하고 썰렁한 집을 떠나 숲으로 가서 고독 속에서 위안을 찾으면서,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했다. 


그가 살아오면서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결혼한 것은 가장 큰 실수이자, 오늘 밤까지 이어지는 그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만약 이 여자가 그를 떠났다 해도, 그녀를 대신할 여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처음 일 분, 처음 한 시간, 처음 하루, 처음 한 달 그리고 처음 한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끔찍하다. 특히 뭔가가 우리한테 심한 상처를 입히고 있는데도, 

우리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거나...     


그녀는 그에게 뭘까? 가족일까, 남일까? 

그는 불현듯, 그녀가 그의 아이를 키우고 끝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합당하다고 여기는 것, 혹은 기적이나 자비라고 여기는 것과 상관없이 자연은 스스로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 자연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할 일을 해낸다. 

이에 불만을 표출하거나 잘못한 사람을 찾는 것은 인간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지진, 화산 폭발 혹은 눈사태에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어떤 질병이든 어떤 바이러스든 개체수를 조절하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책 소개     

알렉세이 바를라모프 지음 『탄생』 라리사 피사레바,전성희 옮김, 2020.12.03. 출판그룹 상상, 15,000원.      

알렉세이 바를라모프(Alexexey Vaflamov) 1963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졸,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어문학부 교수, 현재 고리키문학대학 총장이다.     


라리사 피사레바-러시아에서 태어나 고리키문학대학 문학번역과 졸, 동대학원 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중앙대학교 유럽문화학부 러시아어문학전공 강사.     


전성희-서울 출생, 고려대노어노문학고 졸 같은 대학원 박사, 동화작가. 고려대, 경희대 강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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