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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03. 2023

『품에 안을 수도 없는 미인도를 그리는 이유』

손철주 지음

 ‘그리다’는 움직씨(동사)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 ‘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 그림과 그리움은 밑말이 같아서 한 뿌리로 해석하는 분이 있더군요.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라는 멋 부린 말도 귀에 들리고요.     


그리움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겠지요.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일 테지요.      


신성한 과일을 그린 정물화는 안 입 베어 물고 싶고, 

풍광 좋은 산수화는 가서 노닐고 싶고 아름다운 여인 인물화는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이 깃듭니다.      


그림은 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드러난 자취지요. 


그린이 만 그리운 것이 아닙니다. 보는 이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     


하지만 그림으로 그렸다고 그리움이 씻기고 욕망이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림의 떡’은 냄새가 나지 않지요. 

계곡 그림은 물소리가 들리지 않고, 미인도는 품에 안기지 않습니다. 


그리움을 덜어내려고 그린 그림이 한갓 헛된 몸짓에 그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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