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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18. 2023

천선란 지음. 『나인』

천선란 소설

천선란 지음. 『나인』      

작년쯤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내용은 다소 황당한 것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내가 읽은 소감은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소설이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제목 ‘나인’은 영어로 숫자 ‘9’를 뜻한다. 이 소설의 내용도 황당하다. 외계인이 지구에 피난와서 살고 있는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기 종족끼리는 서로 알고 있다. 그리고 나무, 풀 등 식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 ‘유나인’이다. 아홉 번째 태어나서 이름이 되었다. 소도시의 중학교 재학 중 행방불명이 된 소년이 죽어서 산에 묻혀 있다는 것을 식물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나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처음 서술 부분을 읽으면서 전에 보았던 영화 ‘맨 앤 더 블랙’인가 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의 내용이 지구에 살고 있는 외계인을 관리하는 비밀기관 요원의 활약을 그린 것이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사실은 외계인이다. 특수안경을 끼고 보면 외계인의 본 모습이 나타난다. 내 생각에 작가가 그 영화에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끝까지 다 읽어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내 머리로는 짐작이 안 갔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것인지, 학교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환경 오염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확실한 느낌이 없다. 소설 한 권을 이렇게 여러 날에 걸쳐 읽은 것은 처음이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우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다. 세상이 정말 정해 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기다리다가 해결사가 나타나면 그제야 소리친다.     


사랑했지만 방식과 형태가 달라 두 사람은 섞일 수 없었다. 온수인지 냉수인지, 급류인지 완류 인지, 흐르는지 머무르는지, 바닷물인지 민물인지가 중요하다. 사랑을 지속하려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지 않고, 그 말에 담긴 온도와 흐름까지 같아야 한다.     


영원한 관계 따위는 믿지 않는다. 관계를 망치는 건 사랑과 외로움. 그 두 가지다.     


결국 모든 건 흘러간다는 사실과 세상은 정해진 대로 반복된다는 모순이 주는 안정감.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소나기도 결국 땅에 스몄다가 낮은 곳으로 흘러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다시 비가 되는. 모든 생성을 망라하여 반복되는 우주의 순환.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해일이 몰려오면 놀려오는 대로 휩쓸리면 그만인 것을. 그것을 거스르려 발버둥 치는 순간부터 평생토록 허공을 휘저으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     


책 소개

천선란 지음. 『나인』 2021.11.05. ㈜창비. 426쪽. 15,000원.     

천선란.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 등이 있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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