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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ul 21. 2023

윤성희 지음. 『노년의 발견』

「인생에 노년이 필요한 이유」

이 책의 부제목은 「인생에 노년이 필요한 이유」이다.      


첫머리에 “기품 또는 품위는, 인생의 황혼기가 찾아와도 퇴행하지 않는 정신의 능력에서 온다. 퇴행하지 않으려면 계속 성장해야 한다. 신체가 아니라 정신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 노년은 성장과 성숙을 성취하기 좋은 나이다. 곱게 늙고 싶다.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는 저자 자신이다. 라고 말한다.     


사람은 젊을 때는 철이 없지만, 늙어서는 힘이 없다. 재력과 권력, 미모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기품이다.     


내용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단어들을 풀어간다. “환갑, 안주, 나잇값, 감사, 주책, 까치발, 건망증, 요양원, 고려장, 친구, 사촌, 고향, 족보, 자식, 부부, 사별, 인생, 청춘, 나이, 장수, 불로장생, 무덤”이다.     


“나잇값”은 공감과 관용의 용량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니, 내 마음을 헤아리듯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확장은 자신의 공간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고, 역지사지는 타인의 삶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일과 같다.

육체의 한계를 느낄수록 다른 사람의 불편을 헤아리게 되고 주변의 이런저런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 나잇값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감사” 나이가 들어가면 오직 자신이 신념만이 상식이고 합리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정치 편향은 점차 신념화되고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정신은 맹목과 혐오와 분노로 치솟아 오르고 노년의 이성은 나날이 병들어간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는 말과 논리에 휘둘려 그들의 밥이 되어 살아간다. 그래봤자 세상이 자기 뜻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 말이다. 부정적 의식과 적개심과 심통을 버려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정신과 몸은 따로 놀지 않는다. 상대를 향한 독을 입안에 물고 있으면 그 독은 언제고 제 몸을 해칠 수 있다. 입 안에 있는 말의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는 긍정과 관용과 감사의 언어에서 나온다. 부정과 비판은 젊음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노년의 입에는 긍정과 감사의 언어를 채워두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긍정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게 되는 법이다. 그게 노년이 경지이다.     


“주책” 영국이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말은 잎사귀와 같아서 그것이 많은 곳에는 이해라는 과실을 찾기 어렵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말의 운전대를 놓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의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쓰레기통 속에 쓸어 담아야 한다.


대화에도 분배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대화 참여자의 1/n을 초과하는 발언량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도 나이 60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 초과하는 나이만큼의 일정 비율을 공제해야 한다. 말을 줄여야 거기 권위가 생기고 품위가 만들어진다.     


“친구” 친구는 무수히 많은 사람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한 존재이므로 그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 옳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주지 않을 것을 ‘그’ 사람이니까 주어야 하는 게 친구이다.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과 같다. 그것이 호의든 존중이든 신뢰든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특권이 그에게 주어져야 한다.      


우정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내 정신의 영토에 자리 잡은 친구의 위치를 확인해 본다. 친구는 인생이 깜깜할 때 찾는 출구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가시철망을 함께 넘어가는 덩굴장미다. 덩굴장미처럼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가며 더불어 웃는 생의 도반이다. 가까운 데 있는 친구라면 자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식” 조카 보듯이 자식에게 거리를 두고 살아라. 조마 대문에 밤새워 걱정하고, 조카한테 마지막 남은 것까지 탈탈 털어주는 삼촌, 고모는 없다. 조카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도 원망하는 마음은 크지 않고, 앉으나 서나 조카 자랑하느라 친구들에게 왕따가 될 일도 없다. 조카는 전적으로 의존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정신적인 거리두기, 홀로서기로 당신의 품위를 챙겨야 한다.     


“부부” 혼자 산 시간보다 같이 지낸 세월이 더 많은 사이, ‘당신 없이는 못 살아’ 하다가도 얼마 후에는 ‘당신 때문에 못살아’하는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애증이 교차하는 친구이자 원수로 맺어진 사이, ‘함께’라는 말이 항상 익숙하면서도 가끔은 알다가도 몰라서 ‘혼자’가 되는 사이,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일주일 이상은 곤란하지만, 며칠간은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이, 내가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남이 욕할 때는 못 참고 화를 내게 하는 사이,     


노년의 나이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부부란 서로 어떤 존재일까. 세상의 부부들은 저마다 만인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게 또 고만고만한 삶의 방식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나의 아내는, 나의 남편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결점이 있어서 나하고 결혼했던 것이다. 부족한 건 탓할 일이 아니다. 물감의 색깔이 부족하면 섞어 쓰면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사랑하겠다고 생각하면 “이 복 저 복 해도 처복이 제일이다”, “이 방 저 방 해도 서방이 제일이다”는 속담이 우리 부부의 얘기다.     


“사별” 부부가 한날한시에 죽게 해달라고 청한 착한 농부가 있었다. 제우스가 자신을 극진히 대접해준 가난한 농부 부부에게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줬다. 마침내 생의 마지막 날, 부부는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준 제우스에게 감사하며 서로 마주 보는 나무로 변했다. 신화 속 인물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 이야기다. 여기서 유래하여 사람들은 부부가 같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펠레몬의 소원’이라고 한다.     


“인생” 인생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현자들이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 궁구했지만 그걸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작가 이문구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벗고 왔다가 입고 가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라면 같은 시」 오인태

꼬이지 않으면 라면이 아니다?     

그럼, 꼬인 날이 더 많았던 

내 살아온 날들도

라면 같은 것이냐     

삶도 라면처럼 꼬일수록 

맛이 나는 거라면, 

내 생은 얼마나 더 꼬여야 

제대로 살맛이 날 것이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름조차 희한한 생라면을 먹으며,     

영락없이, 맞다, 생은 라면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태도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다. 나무는 키가 성장할수록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린다. 내적 떨림이 시간으로 충만한 인생으로 살아갈 것인지, 하루살이처럼 뱃속에 알만 가득 채운 인생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장수”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내일까지 살아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백세 인생이라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흔히 말하듯이 오늘 밤에라도 ‘그분’이 호출하면 따라나서야 하는 것이다. ‘염라대왕이 삼경에 부르면 오경까지 살 수 없다’라는 중국 속담도 우리에게는 생사를 결정할 주도권이 없음을 통찰한다. 죽음은 무방비의 삶에 쳐들어온 끔찍한 야만인이다. 그 전장에서 나와 야만인 사이에는 아무런 완충지대도 없다.     


“불로장생” 세상의 모든 가치와 의미는 유한성에서 나온다. 건강도 한계를 느낄 때 그것의 소중함은 깨닫는다. 보석이 돌멩이보다 가치 있는 것은 희귀성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생명의 유한성은 인간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지금의 삶에 더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김훈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로르 아들레르의 「노년 끌어안기」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난다. “우리는 몇 살에 노하가 시작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며 아마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소개     

윤성희 지음. 『노년의 발견』 2022.11.25. 더좋은출판. 222쪽. 16,000원. 


윤성희. 문학평론가. 지은 책 『문학의 발견』 『시, 세상에 말 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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