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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ug 23. 2023

『그레이트 게임』 피터 홉커크 지음.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는 포만감을 느꼈다. 중학생 시절 밤새워 삼국지를 읽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691쪽 거의 700페이지에 가까운 두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지 15년이 지났다.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책 배경이 된 지역을 여행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아시아, 터키 일부 지역을 여행했지만, 버스로 이동하는 여행이라서 풍경만 보고 왔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라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로 런던까지 여행하고 바이칼 호숫물을 음미하고 싶다. 그것도 여의찮으면, 몽골이라도 여행하고 싶다.     


이 책의 부제목은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이다.      


이 책이 제목인 ‘그레이트 게임’은 키플링의 소설 『킴Kim』(1901)에서 “이제 나는 머나먼 북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레이트 게임을 하러 가겠습니다….”에서 시작됐다.      


중앙아시아에서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 중반까지 100여 년에 거처 영국과 러시아 두 제국 간에 벌어진 영토 확장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세계지도에 백지상태로 있는 중앙아시아에 양국의 모험가들이 지도를 채워가는 과정과 전쟁, 그곳에 살고 있는 민족들의 애환과 시련이 제국주의 영국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그들이 지도에 공백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옛날부터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눈에는 신대륙이었지만, 그곳에는 이미 원주민이 유구 이래 터전을 삼아 살고 있었다. 중앙아시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 게임이 시작된 이유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제정 러시아의 인도 침략을 우려한 영국이 중앙아시아 국경지대를 확고히 하기 위해 100여 년간 그레이트 게임의 선수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등 민족들과 외교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현장에 목숨을 걸고 투입된다. 수많은 양국의 유능한 모험가들이 참여했고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영국에서 전설적인 무어크로프트, 번스, 맥노튼, 카바냐리, 영허즈번드 러시아의 카우프만 스코벨레프, 알리하노프, 크롬쳅스키 같은 인물들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 게임에 참가자들은 모두 영웅적 자질이 있다. 예민한 판단력, 과감한 추진력, 다양한 언어 구사력, 현지 적응력, 변장술, 협상력 모두를 완벽하게 갖추고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을 번역한 옮긴이도 후기에 “이 책을 읽다가 끓어오르는 모험의 피를 잠시라도 식혀보기 위해 배낭이라도 짊어지고 집을 나서려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썼다. 두꺼운 책을 일주일 동안 읽으면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양한 모험가들이 벌이는 활약과 고난을 헤쳐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 게임이 벌어지기 전 러시아는 1219년부터 몽골의 지배를 200여 년간 받는다. 이 시기 동안 러시아 사람들은 서구 자유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차단되어 관점이나 문화가 점점 동양적으로 바뀌었다. 몽골의 침략은 러시아의 정신에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동양인에 대한 혐오, 빈번한 호전적 외교정책, 국내의 압제를 금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등이다.      


그 후에 일어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은 이런 공포를 더욱 굳혀주었다. 최근에 와서야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불행한 유산을 털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1812년 여름 나폴레옹이 군대가 행군하면서 통과했던 발트해의 도시 빌뉴스에는 명판 두 개가 붙은 기념비가 서 있다.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40만 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 그 반대편에는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9,000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라고 적혀 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실패한 내용이다.     


인도는 동방 최고의 보물이었다. 영국은 프랑스를 물리치고 이 무궁한 자원의 보고이자 엄청난 소비 시장을 손에 넣으면서 서구자본주의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영국은 이 보물을 지키는 일에 큰 관심을 쏟으며 그런 맥락에서 인도 북쪽으로 넓게 펼쳐진 사막과 고산 지대의 땅을 지도로 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 땅 너머에 러시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도 그리기란 곧 러시아의 인도 공격을 염두에 두고 그 가능한 경로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국력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중앙아시아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면서 몸집을 부풀린다. 러시아 제국의 경계선은 차츰 인도를 향해 다가오고, 결국 20세기 초에 파미르고원 지역에서 영국 세력권의 경계선과 만나게 된다.      


1907년 8월 영국의 에드워드 그레이와 러시아 외무장관 알렉산드르 이즈볼스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다. 8월 31일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이즈볼스키와 영국 대사 아서니쿨슨 사이에 역사적인 영러 협상이 극비리에 체결되었다. 티베트와 관련하여 두 나라는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철도, 도로, 광산, 전신의 양보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대표를 보내지 않고 종주국인 청나라를 통해서만 라싸와 이야기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이 영국의 세력권 안에 있으며, 자신들의 세력권 밖에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지위를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협약으로 그레이트 게임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끌며 양쪽의 수많은 용감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게임은 결국 외교로 해결이 되었다.     


양편의 선수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거의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애국주의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독교 문명이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확고하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이 제국주의적 갈등에서 주로 피를 흘린 사람은 바로 인도인이었다. 그들이 늘 원하던 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인도인은 1947년 영국이 짐을 싸서 떠나자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정복자에게 시달렸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인도인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방대한 러시아 제국이 100년 이상 유지되며 차르 시대 그레이트 게임 영웅들의 기념비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제국은 1991년에야 전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는 1867년 알래스카를 700만 달러에 미국에 판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한, 한 권의 책이다.     


책 소개     

『그레이트 게임』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2008.08.23. ㈜사계절 출판사. 691쪽. 29,500원.


피터 홉커크 Peter Hopkirk.

1930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났다. 영국령 아프리카 지역에서 하급 장교로 복무. 쿠바와 중동의 비밀경찰 감옥에 수감 된 적이 있고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지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 동부 등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년간 더 타임스 중동 극동 아시아 전문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 『실크로드의 악마들』 등이 있다.     

정영목. 서울대 영문과와 대학원 졸업.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대 번역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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