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외 3인 공저.
지난달에 읽은 『2024 미래 과학 트렌드』에서 우리나라 한지원이라는 사람이 연구 논문 〈커피를 들고 뒷걸음질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그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목은 〈대한민국 대표 심리학자들이 엄선한 기발한 연구들〉이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발간하는 유머 과학잡지 〈기발한 연구연감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에서 1991년에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상이다. 기발하고 남다른 생각, 통렬한 풍자나 기상천외한 해석이 담긴 논문, 재미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연구에 주는 상이다.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특이한 점은. 상금이 없다. 시상식에 자비로 가야 한다. 시상식에는 반드시 노벨상 수상자가 참석하고 시상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그노벨상의 수상 기준은 ‘다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이다.
수상 사례를 보면, 2015년 미국에서 벌에 쏘이면 어디가 가장 아픈지 200회 실험한 뒤 가장 아픈 부위를 알아낸 실험. 2015년 독에서 몸의 왼쪽이 가려울 때 거울을 보면서 오른쪽을 긁으면 가려움이 사라진다는 연구. 2017년 프랑스에서 ‘고양이 액체설’이라는 주장. 같은 해 한국인 수상자도 나왔다. 수상자 한지원은 민족사관고 재학 시절 연구한 ‘커피잔을 들고 뒷걸음질 칠 때 거피가 어떻게 출렁이는지’라는 주제로 상을 받았다. 2000년 통일교의 합동결혼식도 이 상을 받았는데, 인구 증가와 소비 촉진에 기여했다는 뜻에서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 외에 독특한 상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황금양털상’은 쓸데없는 연구로 연구비를 낭비했으니 다시는 이런 연구를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일종의 경고 의미로 주는 상이다. 이그노벨상과 차이점이라고 하면, 황금양털상은 과학위원회와 정치가들이 수상자를 선정한다.
2010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논문의 제목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욕’이다. 논문이 대표 저자는 영국 킬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스티븐스 박사이다. 스티븐스 박사는 어느 날 망치에 손을 찧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고 나자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박사는 사람들이 극도의 고통을 느낄 때 욕을 하고 욕이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구를 하게 되었다. 리처드 스티븐스 박사는 욕 연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연구의 절반 이상이 욕에 관한 연구이다. 2009년부터 10년간 내내 욕 연구에 매진할 정도였다.
우리말에 욕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그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을 먹으면 내 몸 깊숙이 영향을 미쳐서 상당히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과하고 부적절한 욕은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모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핵심은 욕을 통해 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고통을 줄여주고 스트레스도 낮춰 준다.
2018년 이그노벨 경제학상은 ‘잘못을 바로잡기: 괴롭히는 상사의 인형에게 보복하면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상사가 있다면 그를 닮은 저주인형에 대신 보복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쌓아두지 않고 해소하는 것이 좋다. 여성과 남성의 수명을 비교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행복하고 오래 산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남성은 100 점짜리 행복을 한 번에 크게 얻으려고 하지만, 여성은 10점짜리 행복을 열 번에 나눠서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이그노벨상 의학상은 ‘충동의 급격한 증가가 건강한 성인의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과 ‘억제의 영향: 소변이 급해지면 어떤 영역에서 충동을 억제하기가 쉬어진다.’이다.
첫 번째 논문은 실험 참여자에게 물을 많이 마시게 해서 소변을 참게 한 다음 수행 능력을 테스트하는 방법이다. 이 연구는 우리가 소변을 참고 있을 때는 기본적인 인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문은 앞의 논문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결론적으로 ‘소변을 참으면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이다. 기본적인 욕구가 억압을 받는 상태, 즉 소변을 참는 상황이 무언가를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것까지 참게 해준다. 참을성이 신체적 반응뿐 아니라 정신적 반응까지 통제할 정도로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팔 때 ‘오픈데이’라고 해서 부동산 중계소에 집을 보여주는 날을 잡는다. 이날 집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 집주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빵을 굽는 것이다. 거기다 원두커피를 진하게 내려 집 안에 커피 향이 감돌게 한다. 그럼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이 집에서 편안하게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또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이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대인은 돈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할 건지 수없이 시뮬레이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돈 아껴 써라’에 중점을 둔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큰돈을 상정해 놓고 그 돈으로 무얼 할 건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교육의 본질이다. 돈을 가지고 무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 뭐 하러 돈을 벌어야 할까? 돈을 어떻게 쓸지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작은 돈으로 어떤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린 뒤 직접 돈을 써봐야 한다. 그랬을 때 내 선택이 얼마나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지, 불만족인지 내 선택을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 한다.
프라세보 효과(위약효과)와 반대되는 ‘노세보 효과’가 있다. ‘해를 입게 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노세보 효과는 기대 때문에 역으로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안 좋다. 해롭다 하는 암시를 계속 받게 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데도 안 좋은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환자는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예상보다 더 빨리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에 이그노벨상 화학상은 ‘낭만적인 사랑과 심각한 수준의 강박장애는 구분하기 어렵다’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정신적 강박 상태가 뇌의 화학적 변화의 측면에서 동일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 20명과 강박장애를 보이는 사람 20명을 비교했다. 두 집단의 세로토닌 수치가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는지 분석했다. 세로토닌은 평상심을 유지하고 행복감을 지속 시켜주는 호르몬이다. 사랑에 빠지면 때로 우울감과 불안감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세로토닌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념적으로나 관념적으로는 강박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뇌 상태나,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의 뇌 상태는 같다는 의미이다.
2014년 이그노벨 심리학상을 수상한 논문은 ‘늦게 자는 저녁형 인간일수록 어두운 3가지 특징이 더 많이 나타 난다’이다. 인간의 어두운 3가지 특징은 심리학에서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마키아벨리즘’으로 설명한다. 심각한 수준의 자아도취적 성향, 타인을 무참히 짓밟는 사이코패스적 성향, 권력이나 이득을 얻기 위해 타인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마키아벨리적 성향을 말한다.
우리는 왜 잠을 잘까? 보통 3가지로 수면의 이유를 설명한다. 첫 번째, 복원가설이다. 뇌는 깨어 있는 동안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찌꺼기들이 뇌에 쌓이는데 자는 동안 그 찌꺼기를 배설하고 다시 에너지를 흡수하는 일을 한다. 두 번째, 에너지보존 가설이다. 밤에 잠을 안 자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에너지를 보존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다 같이 더 오래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인지심리학적 가설이다. 우리 뇌는 밤에 자는 동안 낮에 했던 행동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자는 동안 시냅스와 시냅스 사이의 연결을 강화해서 학습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자기가 한 행동의 결과에 후회하지만, 후회하면서도 자신이 했던 방식을 또 반복한다.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 일반인과 구별할 때, 중요한 것은 후회한 다음 행동의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예를 들어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술 깨고 나서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다음에 또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한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실수를 뉘우치고 후회한 다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의 삶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산다. 생각하는 것도 사람 숫자만큼 많을 것이다. 모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이런 기발한 상에 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책 소개
『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김경일, 이윤형, 김태훈, 사피엔스 스튜디오 공저. 2022.06.10. 한빛비즈(주). 292쪽. 17,500원.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같은 대학원 졸업.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저서, 『적정한 삶』 등.
이윤형.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실험심리학 석사학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인지심리학은 처음이지?』 등.
김태훈. 경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같은 대학원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