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Jul 02. 2024

『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적당한 두께의 소설을 찾다가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시인, 소설가이다. 

저자가 읽은 책 중 39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고전을 왜 읽어야 하냐고요? 읽지 않아도 됩니다. 꼭 읽어야만 하는 책, 그런게 어디 있나요? 다만 언제 읽어도 제 심장을 뛰게 하고,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며 일독을 권하게 만드는 서른아홉 권의 고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고전을 읽는 작가의 관점이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를 정리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1951년 나온 소설이다. 이 책은 주인공 콜필드의 성장 소설이다.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해 준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페이지마다 흘러넘치는 작가의 감수성에 감탄한다. 서정적인 문체로 슬픔의 항목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 줄타기 묘기에서 세 차례 떨어진 어릿광대,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꽃 피는 나뭇가지로 떨어지는 눈발 등 슬픔은 도처에 있다.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까치. 2010.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이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기다리고 머무는 일이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보라. 침묵에 둘러싸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글은 말과 침묵 사이에서 투쟁한 기록이다. 좋은 글은 늘 침묵을 머금고 있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완전화 세계이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말은 침묵과의 관련을 잃어버리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은폐되어 있는 침묵의 세계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어져야 한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토베 얀손(1914~2001) 『여름의 책』. 소피아와 할머니는 여름 내내 섬에서 지낸다.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일상을 나눈다. 둘은 서로를 옭아매는 법이 없다. 언제나 평등한 위치에서 대화한다. 

“할머니는 언제 죽어?” 

“얼마 안 남았지. 하지만 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둘은 서로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소피아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아이가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천국에 대해 논쟁한다.

“얘야, 나는 아무리 해도 이 나이에 악마를 믿지는 못하겠구나. 너는 네가 믿고 싶은 걸 믿어. 하지만 관용을 배우렴.” 

“그게 뭔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거지.”

“존중하는 건 또 뭐고!”

“다른 사람이 믿고 싶은 걸 믿게 두는 거지!” 

할머니의 노화와 엄마의 부재가 소피아를 그늘지게 만들지 않는다. 조부모와 자란 아이들은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안다. 불안이 행복의 이면에 있음을 안다.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25인. 2017. 봄날의책. 인간은 슬픔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내보이는 감정 표현도 ‘울음’이다. 기쁨을 모르는 자는 있어도 슬픔을 모르는 자는 없다. 근현대 일본 작가 스물여섯 명이 쓴 마흔한 편의 수필집이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2015. RHK.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에서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 사는 일이 아닐까.


소설은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일대기다. 1891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고 학자와 교수로서 연구에 매진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1956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이야기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훗날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그 사랑을 유지하는 대신, 사랑을 놓고 한순간에 노인처럼 늙어버린다. 그는 가질 수 있는 것을 무리해서 갖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고난을 애써 피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갔다. 그렇다고 스토너의 인생이 무력하거나 하찮았다고 할 순 없다. 삶이 주는 고통, 기다림, 인내, 사랑, 역경, 일, 열정, 후회, 두려움, 희망, 기쁨, 슬픔 등을 성실히 겪은 뒤 죽음을 맞이했다.     


책은 왜 읽을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라고. 남의 말을 듣고 나의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는 것.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책 소개

『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2025.01.15. (주)난다. 259쪽. 13,000원.     

박연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등, 장편소설『여름과 루비』 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