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주인공 이영초롱 판사는 초등학교 6학년에 아빠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 나면서 가족이 흩어져서 살게 된다. 주인공은 고모가 보건진료소 소장으로 있는 제주도 부속 섬인 고고리섬으로 보내진다.
고고리섬에서 복자와 친구가 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제주도 본섬 대정읍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서울로 부모와 재결합한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하여 판사로 임용된다. 서울에 있는 법원에 근무하던 중 재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욕을 한 문제로 제주도로 좌천된다.
어렸을 때 살았던 제주도에서 근무하게 된 이영초롱 판사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조우하고 친구 복자가 원고가 된 사건을 담당한다. 복자는 간호사로 제주에 있는 영광의료원에 근무하면서 직업병으로 유산한다. 의료원에서 암 환자에게 투약하는 약제를 간호사에게 제조하게 하였고, 그 약이 임신부 낙태의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감춰 산업재해로 인한 낙태였음을 증명하는 재판이다. 합의부 배석판사로 사건을 담당했지만, 기피신청에 의해 재판에서 배제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소설의 줄거리가 된 내용은 제주의료원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섬 이름이나, 병원, 법원 명칭 등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모두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추측해 보면, 고고리섬은 가파도인 것 같다. 영광의료원은 제주도 직영 제주의료원으로 추정된다.
가파도에 가면 청보리밭이 유명하다. 보건진료소도 있다. 그리고 소설에 고넹이돌(고양이 돌 제주방언), 할망당도 등장한다. 소설 등장인물도 제주도에 짐작할 수 있는 인사들이 등장한다. 법원과 판사들이 겪는 업무도 상세히 묘사한다. 취재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다.
책 중에서
야트막한 언덕에는 돌담으로 경계를 쌓은 제주식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작은 무덤들은 아이들 것이라고 했다. 옛날 섬에서는 아이들 사망률이 높았다고, 죽을 이유는 얼마든지 많았다. 제주에는 그렇게 가여운 애기들을 가리키는 설룬애기라는 말이 있고 서럽고 불쌍한 엄마를 가리키는 설룬어멍이라는 말도 있다.
가난한 사람,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올바른 것을 위하다 힘들어진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다 복을 받는다 하지,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싫다. 거짓말 같아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메스를 든 의사와 같다.는 말이었다. 의사들에게 인체를 찢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삶을 찢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이다. 맘이 있지? 그러면 절대적으로 반응이라는 것을 해. 그리고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늘 범위 안에 있어.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니? 콘택트, 연결, 접속이 항상 있어야지.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소개
『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2020.09.09. (주)문학동네. 243쪽.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