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표현하는 법」
이 책의 부제목은 「느낌을 표현하는 법」이다. 다섯 편의 시를 해석하며 표현 방법을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단순한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단풍 든 사사프라스 잎사귀의 색조나 어느 8월의 아침에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 또는 당신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누군가를 보고 내면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욕망을 표현할 단어를 찾으려 해 보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 않으며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소묘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인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 가운데서 자기 앞에 있는 것을 직접 표현하려고 시도하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묘사의 기술은 어느 정도 지각의 기술이다. 자신이 보는 것을 말하려면 보는 행위의 집중력을 놓여야 한다. 더 많이 볼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윤곽 소며가 그 예다. 그것은 단지 개별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뿐, 아니라 연필로 윤곽선을 따라가는 작업을 수반한다. 묘사를 잘하려면 주의 집중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묘사가 의식을 묘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묘사는 당신이 보는 것을 말하기와 당신이 보는 것을 말하기 사이의 균형에 더 가깝다. 랠프 윌도 에머슨은 사물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신경을 쓰고 주의해서 봐야만 자신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사물에 대한 재현이 더 정확하고 감각적 일수록, 우리는 거기서 보는 행위를 하는 누군가를 더 많이 느끼게 되고, 감수성이 더 많이 작동하게 된다. 눈과 언어 능력이 사물의 모습ㅇ르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수록, 우리는 그의 시선 자체를 더 많이 보게 되고, 특유의 목소리르 ㄹ더 많이 듣게 된다.
예술적 기질과 다른 기질을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산다는 것이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라는 근본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나는 자신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것(이 몸, 이 사회, 이 인간의 법들과 사회적 기대들의 집합)은 마땅히 그래야 하며, 어떻게 다를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놀랍다. 그러나 세상이 기묘하거나 자신이 기묘하거나, 또는 둘 다 기묘하다고 믿는 것은 모든 창조적인 가능성을 낳는 의심의 창문이다. 시가 주는 근본적으로 무용한 사색의 기쁨을 즐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묘하다. 기묘함이란 평소와 같은 일이나 단단한 땅에서 발견되는 견고한 정체성이 아닌, 문제의 세계를 뜻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유리가 본 것을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고, 너무 쉽게 반응하는 것은 거짓이다.
적절한 동사의 묘사적 힘은 엄청나다. 그것은 일종의 근육 같은 구체성을 품고 있어서, 글로 쓰인 세계가 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때로 동사는 다른 품사가 새롭게 능동적 역할을 맡게 될 때 묘사하는 힘을 얻는다. 동사는 열대의 장면에서 의성어처럼 울린다. 호플러의 시 「녹색 돌풍」에 “비가 물항아리에 낭만을 저장한다.” 여기서 ‘낭만을 저장한다’는 금속성의 빗방울 소리를 흉내 내는 동시에 흠뻑 젖는 일에 대한 분위기가 관점을 암시하며 교묘한 종류의 감각을 만들어 낸다.
힘을 서로 반대로 당기는 양극성은 글쓰기를 생생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느 하나의 초점보다 우리에게 더 실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은 항상 하나 이상의 끌림, 하나 이상의 강한 당김이 작용하는 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최고의 묘사는 세상의 이중적 본성, 이를테면 모든 밝음이 언저리에 존재하는 그림자, 도덕성의 어둑한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머를 인정한다. 관찰하는 대상과 그 비교 대상 간의 거리에서 유머가 나올 수 있다.
단일한 비유적 표현 내에서 식물과 인공물,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작고 거대한 것을 연결하는 방식은 사고가 형성되는 구역인 정신에서나 만날 듯한 요소들의 의외의 부딪침을 통해 언어에 활력을 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질문은 항상 답보다 조금은 더 믿을 만하다. 말하는 내용이 꼭 수사적인 질문의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최선의 묘사는 애매하게 남아야 하는 공간을 포함하고 한계를 인정한다.
회화는 풍경에 대한 문자적 표현 없이도 나름의 방식으로 땅과 하늘, 돌과 공간과의 조우를 기록한다. 강렬하고 인상적이고 빠르게 스치는 사막의 빛, 지도 제작. 항공 지도 제작. 술꾼의 몰입, 색의 깃듦. 우리는 언어로 쓰인 색을 그렇게 잘, 언어 없이 경험할 수 없으므로 작가는 화가와 같은 식으로 색에 깃들 수 없음을 언제나 슬퍼한다. 그런 직접성, 예를 들어 빨간색과의 그런 매개되지 않은 조우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색은 어떻게 지면으로 독자의 내면의 눈으로 들어오는가? 긁힌 빨간색 문. 조금 더 들어가면 물질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거칠고 긁힌 빨간색 문. 이제 두 가지 질감이 색에 추가되었다. ‘거친’에는 장소외 시대의 암시까지 포함되어 있다.
독자에게 지면 위에 세상ㅇ르 현실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충동은 종종 형용사와 부사로 손을 뻗는 것이다. 그런 수식어는 문장이나 행에 수많은 감각적 성질을 부여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작가들은 종종 원재료 자체가 재미없어 보일 때, 마치 주방의 양념처럼 그런 첨가물에 의존하는 데, 명사와 동사 자체가 충분히 흥미롭지 않다면 형용사나 부사 양념을 아무리 써도 사실 큰 효과가 없다.
문체는 복잡한 것을 말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문체가 말해 주는 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한 무언가, 시 작품 자체에 대한 그리고 개인적인 앎의 방식, 즉 인간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사적인 언어를 소개해 주는 시인의 말하는 특성에 대한 무언가다.
아름다움은 단지 사랑스러움이나 우아함, 또는 기분 좋은 모습만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분명 아름다움의 일부일 수는 있다. 경험의 질감을 재현하려는 작가에게, 아름다움은 단순히 정확함, 즉 진짜처럼 보이는 것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다.
묘사의 진실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각의 진실에 대한 충실함. 다시 말해 ‘앎’의 과정에 대한 관심과 헌신일 것이다. 감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재평가이며 세상을 판단하고 다시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묘사의 작업이 앎의 과정을 면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며, 특이한 표현도 익숙한 방식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진실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시는 이외의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고 우리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현실을 낮설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언어의 불완전함이 빠르게 포스트모던 글쓰기의 클리셰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갑자기 익숙해진 망설임, 즉 언어의 능력에 대한 의심에 의존하지 않고 단어의 불가피한 제약들고 협상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창작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어를 불신하고, 우리가 읽는 시의 절반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세상과 어느 정도의 분리를 경험한다. 그래서 에덴에는 분열을 야기하는 의식을 지닌 뱀이 등장했다. 만일 우리가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과 친밀한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는 느낌 없이 세상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묘사란 세상을 사실적으로 만든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책 소개
『묘사의 기술』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2022.05.20. 엑스북스. 189쪽. 13,500원.
마크 도티 Mark Doty. 뉴저지 뉴브런즈윅에 있는 럿거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8년 전미도서상 수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PEN/마사 알브란트 퍼스트 논픽션상 수상. 저서. 『불에서 불로: 신작시 선집』 등
정해영.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 대학원 졸업. 프리랜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