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다.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 박혀 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 지닌 속성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이러한 목적에 많은 이름을 부여하며 그 성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한다. 하지만 수용소에 갇힌 포로에게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침에 점호 마당에 줄을 서서 일하러 떠날 시간을 한없이 기다린다. 바람이 일 때마다 찬 공기가 옷 속으로 들어와 무방비 상태의 우리 몸속을 타고 내려간다. 주위의 모든 것이 회색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일찍 떴어. 오늘은 어제보다 약간 더 따뜻한데. 두 달 후, 한 달 후, 추위가 휴전을 선포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적이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해가 진흙의 지평선 위로 환하고 선명하게 떴다. 옷을 뚫고 들어오는 온기를 느꼈을 때 인간이 왜 태양을 숭배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1943년 12월 13일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었다. 밤이 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이 명백한 그런 밤이었다. 간수들도, 이탈리아 사람이건 독일 사람이건,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와서 직접 목격할 용기를 낼 위인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세워 정성스래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그리고 그녀들이 기억해 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그곳에서는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수용소가 뚜렷하고도 거대한, 생물학적, 사회학적 실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이, 사회적 지위, 출신, 언어, 문화와 습관이 전혀 다른 수천 명의 개인이 철조망 안에 갇힌다. 그곳에서 그들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고 통제당하는, 만인에게 동등한 삶, 그 어떤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삶에 종속된다. 이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험장이다.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 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가라앉은 사람이라는 범주다. 상반되는 다른 범주들(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멍청한 사람, 비겁한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 불행한 사람과 운 좋은 사람)은 그다지 눈에 띄게 구별되지 않고 선천적인 요소가 적어 보이며, 무엇보다 복잡하고 수많은 중간 단계들을 허용한다. 실제로 한 국가가 문명화될수록, 비참한 사람은 너무 비참해지지 않도록, 힘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지혜롭고 효과적인 법률들이 더욱더 많아진다.

그러나 수용소 안의 사정은 이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 절망적일 정도로,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엘리아스가 다시 자유를 찾게 된다면 인간사회의 가장자리에,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수용소에는 범죄자도 정신병자도 없다. 지켜야 할 도덕률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없으며, 우리가 하는 행동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일뿐,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병자도 없다.


우리 주위에도 엘리아스를 닮은 사람들, 그 씨앗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목적도 없이, 모든 형태의 자기 절제와 양심을 결여한 채 살아가는 개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결함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엘리아스처럼 그런 결함들 덕분에 살아간다.


앙리는 예의 바르게 양해를 구한다. 다시 사냥과 투쟁 준비를 완전히 끝낸 그가 여기 있다. 그는 다루기 힘들고, 멀리 떨어져 있고, 갑옷으로 무장했고, 모두의 적이며 창세기의 뱀처럼 비인간적일 정도로 교활하고 이해 불가능한 존재다.


앙리와 대화를 하고 나면, 아무리 그의 이야기가 친절했다고 해도 늘 가벼운 패배감 같은 걸 맛보게 된다. 나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앞에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 게 하니라 그의 손에 좌우되는 도구였던 건 아닌지 혼란스러운 의심이 든다. 내가 알기로 지금 앙리는 살아 있다. 자유인으로서의 그의 삶이 어떻지 몹시 궁금하지만 그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레비는 지옥보다 더 참혹한 환경에서도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인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 는 게 우리의 지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 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 삶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흐릿했고 아득했다. 그래서 몹시 달콤하고 슬펐다. 각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미 끝나버린 모든 일들에 대한 기억처럼, 반면 수용소에 들어오는 순간 각자 전혀 다른 일련의 기억들이 시작되었다.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설 정도로 고통스러워야 할 것 같은, 죽음을 앞둔 나날들도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노동, 추위와 배고픔은 우리들의 관심을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쏟아부을 만큼 엄청나다. 늘 그렇듯, 소식은 모순과 추측의 후광에 싸여 전해진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탈리아인들은 96명이었다. 그중 10월까지 생존한 사람은 불과 29명이었고 이들 중 8명은 선발되어 갔다. 이제 우리는 21명이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우리들 중 몇 명이 새해를 볼 수 있을까? 봄까지 몇 명이 살아남을까?


당시 나는 인간이 죽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했다. 밖은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까마귀 수만 놀랄 만큼 늘어났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희망을 갖는 버릇,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는 버릇이 사라져 버렸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일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은 쓸모없었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고통의 원천이자, 그 고통이 일정 한계를 넘으면 자연의 섭리에의해 무뎌져 버리는 감수성이라는 것을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기쁨, 두려움, 그리고 고통과 마찬가지로 기다림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소련군에 의해 독일군이 퇴각하고 수용소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입원 병동에 있는 환자들만 남았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한겨울의 추위도 견뎌내야 하는 자급자족해야 하는 원시 상태와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되고 마침내 소련군이 진입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세계 각처에서 작가에게 질문이 쇄도한다. 그에 대한 답변도 책의 부록으로 실려있다. 인간의 잔인함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책 소개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지음. 2007.01.12. 돌베개. 340쪽 12,000원.


프리모 레비(1919~1987).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이 토리노로 돌아왔다. 1963년 제1회 캄피엘로 상을 수상했다.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로 1982년 비아레조 상과 캄피엘로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저서 『주기율표』, 『휴전』, 『멍키스패너』,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 등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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