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이름의 숨겨진 이야기」
이 책의 부제목은 「우리 땅 이름의 숨겨진 이야기」이다.
저자는 30여 년 우리 국토 100여 곳에 이르는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지리학은 인문학의 핵심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사유의 흐름이 그곳에 살았던 인간들의 땅과 집, 즉 공간을 중심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땅은 인간의 정신이 깃든 정서적 지문이자, 지울 수 없는 영혼의 발자취다. 그래서 장소가 사람을 만들며, 그 장소만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한다. 이 책은 로렌스 더럴의 『장소의 정신 Spirit of Place』에서 영감을 받았다.
백령도에선 장산곶 마루의 산세가 훤히 보인다. 옹천, 독벼랑의 모습 그대로다.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엔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도 있다. 장산곶의 빼어난 경관에 대해 청담 이중환의 『택리지』는 호남의 변산, 호서의 안면도와 함께 국가에서 이곳의 소나무를 관리하던 곳임을 알린다. 그 용도가 궁궐을 짓고 배를 건조하는 목적이었다.
변산의 옛 이름은 ‘고깔산’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명칭, 변산은 아무 뜻도 없이 변弁의 같은 음을 따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대한 사상은 시끄러운 저잣거리가 아니라, 유행과 선풍에서 고립된 곳에서 나온다. 변산의 적막 속에서 허균은 형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 우반곡을 ‘신선고을’이라고 말했다. 변산 안쪽의 이 숨은 터전은 유토피아를 향해 혁명을 꿈꾸던 자리인 셈이다.
담양은 백제의 추자혜가 신라 경덕왕 때 추성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때 담주로 바뀌었는데, 다시 담주와 기양을 합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이 땅은 정자의 고을이다. 1530년경으로 추정되는 소쇄원, 1533년 면앙정, 1540년 환벽당, 1560년 식영정과 서하당, 1585년 죽녹정을 새로 중수한 송강정이 모두 16세기에 건립되었다. 이 밖에 명옥헌, 취가정까지 건립되었다. 담양이 정자의 고장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호남인의 정신적 뿌리로 불리는 이유다.
밀양의 상징적 유적은 영남루다. 평양의 부벽류,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꼽혔다. 밀양 사람들은 점필재 김종직, 사명당 유정대사, 경봉대사의 고향이란 사실에 엄청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유정대사의 본명은 임이환이다. 그는 사명당이나 송운이라는 호를 즐겨 썼는데,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다. 1556년 13세 때 직지사의 신묵스님을 찾아 승려가 된다. 18세에 승과에 급제한 후 15년간의 한양 체류 중 스승 황여헌, 노수신 외에 박순, 이산해, 고경명, 기대승, 이정구, 최립, 유성룡, 최경창, 이덕형 등 당대의 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맺었다. 32세 때 묘향산이 서산대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3년간 서산의 정법을 익혔다.
이곳 재약산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을 옮겨오면서 절 이름도 영정사에서 표충사로 바뀌었다. 사명대사의 호국 성지로 성역화가 되었다.
청담 이중환의 『택리지』에 ‘조선의 인재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일선(선산)에서 난다.’는 풍문을 전한다. 이때 인재는 높은 벼슬아치가 아니라 불의에 굴하지 않는 높은 정신의 소유자, 즉 참된 선비를 일컫는다. 금오산이 우뚝 돌출한 아래로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낙동강이 지나가고 있는 농경 문화 시절 이상적인 자리다. 선산은 선산 김씨 본거지다.
무주, 진안, 장수를 아울러 일컫는 무진장은 끝이 없고 다함 없다는 뜻의 무진장 속에 의미를 투사한 세 고을의 별칭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에 둘러싸인 이곳의 지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원이다. 북쭉의 개마고원과 상벽을 이루는 진안고원은 특히 그렇다. 진안고원은 소백산맥 자락인 민주지산, 대덕산, 덕유산은 물로 노령산맥의 대둔산, 운장산, 구봉산, 만덕산 줄기에 위치한다. 무진장 기행 동안 질곡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질곡이란 죄인을 구속하는 형구인 차꼬와 수갑이란 뜻이다. 높은 산 깊은 골로 이어진 무진장이 질곡을 드러낸 삶이 터전이었을까?
진안을 대표하는 음식은 애저찜이다. 애저란 슬픈 돼지다. 음식 이름치곤 참 특이하다. 어미 뱃속에서 죽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지금은 태어난 지 한두 달이 되어 사료를 먹기 전의 새끼 돼지가 재료다. 거기다 약재를 넣고 푹 고아 고기가 말할 수 없이 부드럽다.
상주는 보이는 실물이 아니라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정신의 여행을 요구하는 땅이다. 함창의 가야왕릉이나 삼국시대의 고분군, 견훤 산성처럼 흔적을 남긴 것들은 물론, 수많은 석불좌상이나 입상들은 이곳에서 무수한 사찰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주가 인재의 산실이 된 이유는 고려 때 세워진 상주향교와 1938년(태조 7년)에 세워진 함창향교가 바탕이다.
전남 영광의 옛 지명은 백제 때의 ‘무오이군’이 신라 때 ‘모지’로 그리고 경덕왕 때 ‘무령’이 되었다가 고려 태조 때 ‘영광’으로 바뀌었다. 고려 인종 때 영광이란 지명과 함께 ‘정주’란 지명이 함께 쓰인걸 볼 수 있다. 지금 영광굴비의 원형이 ‘정주굴비’로 불렸다는 기록 때문이다. 당시 정주굴비는 진상품이었다. 기운을 북돋운다는 뜻의 조기와 그걸 말린 굴비 역시 비굴하지 않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함양은 조선시대 ‘좌안동 우함양’으로 일컬어진 유학의 산실이며 사림의 본거지였다. 함양이 선비의 본산으로 우뚝 선 계기는 거유 정여창으로부터 비롯된다. 안동이 후학 이황의 땅이라면 함양은 스승 정여창의 고장이다. 정여창은 이황의 반세기 전 스승이었으니 인물을 중심으로 고을을 품평하더라도 함양은 안동보다 먼저다.
제주도는 불가사의한 신화의 섬이며, 신비롭고 낯선 땅이다. 역사적으로도 제주도 원주민은 주호인으로 한반도 종족과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의 역사는 애월읍 어도리 빌레못굴 탐사에서 밝혀졌듯 구석기까지 올라간다. 그 동굴에서 구석기 혈거 유적지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생활양식뿐 아니라 지명이나 언어까지도 육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포항의 옛 지명은 ‘근오지현’이다. 해맞이 고을을 뜻한다.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편에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엽 이후의 명칭인 포항은 ‘나룻목’이란 뜻으로 바뀌었다. 나루의 지형이 강조된 이름이다.
강화도는 단군의 시기까지 소급된 마니산 참성단이 있다. 교동도와 석모도를 거느리고 있는 이 섬은 국난의 시기마다 나라를 지켜낸 보루였다. 보루란 적을 막아내는 진지를 말하는데 ‘보’는 작은 성이고 ‘루’는 큰 성이다. 이 섬에 있는 광성보 같은 돈대가 보라면, 정족산성은 루에 해당한다. 역사적 격변기마다 강화도는 그 ‘보와 루’를 통하여 국토를 지켜낸 섬이다.
목포에 온금동이 있다. 옛 이름은 ‘다순구미’이다. ‘볕이 따스한 후미진 곳’이라는 뜻의 우리 고유어다. 유달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한 남향받이 마을이다. 햇빛은 물론 별과 달을 가장 먼저 만나 가장 늦게까지 그 빛 속에 잠기는 자리다. 목포는 많은 문인, 화가, 음악가 등이 배출되었다. 진도아리랑, 품바의 고향도 목포다.
청풍은 제천시 청풍면이다. 내륙에서 최고의 경관으로 첫 번째다. 원래 지명은 ‘물태리’다. 물태리는 충주호에 떠있는 섬이다. 밤이 되어 하늘을 보면 물태리와 달이 본디 한 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청풍의 고구려 때 이름이 사열이다. 이두식 한자다. 사열이란 ‘서늘이’의 음을 표기한 이두다. 서늘하다는 뜻이 ‘사열이’로 표기되었으며, 그 서늘하다는 뜻과 가장 가까운 한자어가 시원한 바람을 뜻하는 청풍으로 바뀐 것은 신라 경덕왕 때다.
북쪽이란 어감 속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예로부터 죽음의 땅을 ‘북망산천’이라 했다. 기개가 시퍼런 선비의 서재를 북창이라고 했다. 북쪽은 빛의 현혹으로부터 동떨어져 정신의 수의를 드높이던 방위였다. 한반도 지형상 북쪽은 북고남저로 더 높은 어떤 영지를 의미하는 방향이다. 명당의 첫 번째 조건이 북쪽의 형세, 곧 진산과 주산의 모양새에서 찾아졌다. 그 산세를 등지고 궁궐과 사찰 그리고 집터가 정해졌으며, 왕릉과 묘소가 앉혀졌다.
해남은 영암과 강진 그리고 목포와 이웃하면서 좌우로 진도와 완도를 끼고 앞으로 다도해 해상을 열어놓는다. 이 땅은 백제의 ‘새금현’이었다. 지형적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한 지명이다. 새금은 ‘사이구미’ 즉 ‘두 구미 사이의 바다’란 뜻이다. 새금현은 신라 때 ‘침명현’으로 바뀐다. 해남으로 바뀐 시기는 940년경인 고려 태조 때다. 해남의 주산은 두륜산이다. 두륜산의 우리말 이름은 ‘한듬’이다. 대둔산과 마찬가지로 ‘큰 둔덕’이란 뜻이다. 두륜과 대둔의 뜻이 모두 한듬이란 건 양주동의 학설이다.
서산은 백두대간의 한 지류인 금북정맥이 벋어 내려 태안반도까지 흘러내린 한 가운데 위치한 고을이다. 동쪽으로 차령산맥이 세워 놓은 가야산과 오서산이 병풍처럼 우뚝하고 그 사이로 바다가 밀고 들어와 내해를 형성했다. 그곳이 지금 농경지와 철새도래지로 바뀐 천수만이다. 그 앞바다에 간월도가 있다. 이곳은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던 전진기지였다. 1989년에 태안군이 분리됐다.
장소는 장소마다 깃든 영험한 힘이 다르다. 찻집이나 술집보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말 ‘높다’는 긍정적인 뜻을 지닌 말이다. 지위나 학식은 물론 인품에 이 말이 붙을 때가 그렇다. 산이나 나무, 건물에서도 높다는 언어는 신성하다는 의미까지 보태지곤 한다. 높다는 건 외로움과 짝이며, 몰이해의 영역이기도 하다. 여행이 인생을 닮은 건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와 마주치곤 하는 것! 그게 인생이고 여행길이다.
통영을 ‘충무’로 부른 적이 있다. 그 자취가 ‘충무김밥’이다. 통영은 아름답다. 고성반도의 남쪽 끝자락, 겹겹으로 포구를 감싸고 있는 산새며, 올망졸망 한려수도에 박혀 있는 섬들의 인상이 그렇다. 통영은 산촌이라는 인상이 짙다. 전망도 마찬가지다. 바다 건너 동쪽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건 병풍 같은 산자락들인데 거재도의 가라산, 계룡산, 노자산, 선자산, 앵산의 산그늘이 앞을 막아선다. 호도의 안자락을 더듬어 나가면 미륵도, 한산도, 매물도, 추봉도, 사랑도, 욕지도, 용초도, 비진도, 연화도, 장사도, 추도 등 비경을 섬마다 감추고 있다.
경주는 우리 역사의 절반을 떠메고 온 고을이다. 서라벌은 도읍으로만 자그마치 대략 1,000년이다. 그 안에 펼쳐진 정치와 문화 그리고 예술을 자취는 너무도 풍성하다. 과장하면 경주는 한반도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일 문화권이며, 독자적인 역사의 영역이기도 하다. 서라벌, 사라, 사로는 모두 ‘새 밝’ 곧 ‘동녁이 밝다’라는 뜻이니 지금의 서울이라는 언어의 뿌리다.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속인들은 산을 떠나네’ 임제의 시구다. 그 유명한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산’으로 통한다. 그런데 산이 언제 우리 곁을 떠났나? 임제는 인간의 타성을 벗어나 산의 마음을 읽었다. 진실의 척도 하나를 본보기로 세운 사람이다. 속리산은 ‘속인들이 떠난 산’이라고. 전남 나주의 회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보한재 신숙주의 고향, 나주 노안과 이웃이다. 신숙주의 132년 고향 후배다. 신동이었던 임제는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죽은 후에 곡하지 말것,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해서 진심과 사심이 뒤바뀔 순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 일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그 양심의 행로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바로 선비 정신의 현대적 의의이다. 성삼문은 죽임을 당했으나 영원히 살아 칭송을 받는가 하면, 신숙주는 훼절해 입신양명을 이루었으나 오늘날까지도 ‘숙주나물’로 씹히는 연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선비 정신은 비겁한 승자보다 영광스러운 패자를 자처하는 정신이며, 불의와 타협해 얻은 성취보다 정의로운 실패를 옹호하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선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며 영원한 승자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반드시 멸망하며, 역사의식이 부재 하는 집단은 위험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군산은 우리말로 ‘무르뫼’다. 무리를 이룬 산이란 이 이름은 고군산열도에서 ‘군산’을 따온 것이다. 고군산열도는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 관리도, 장자도, 말도 등 열두 개의 유인도와 마흔일곱 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섬의 군락이다. ‘열두대섬’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칠산어장의 주요 무대다. 군산은 금강은 물론 동진강과 만경강 하류에 위치한 충적평야 지대다. 호남평야의 쌀을 한양으로 이송하던 조세 창고, 군산창이 있던 이곳은 조선시대 조운의 중심지였다.
심심할 때 읽으면 우리나라 땅과 명칭에 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책 소개
『지명발견록』 이경고 지음. 2024.10.21. (주)문학수첩 387쪽. 16.000원.
이경교.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같은 대학원 졸업. 중국 CCIT대학교에서 교환교수 역임. 시인, 인문학자.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저서 『예술, 철학, 문학』, 『모래의 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