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by 안서조

이 책은 로마의 시사 잡지 『레스프레소』에 저자가 쓴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칼럼 중 2000년 이후 것을 모아 만들었다. 1부, 늙은이와 젊은이. 2부, 인터넷 세상. 3부, 음모와 대중 매체. 4부, 인종주의의 여러 형태. 5부, 철학과 종교 사이. 6부,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하여. 7부,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로 구성되어 있다.


에코는 현대를 지그문트 바우만이 사용한 〈유동(또는 액체) 사회 Liquid Society〉라고 평가한다. 현대에 생겨난 특징 중 하나가 국가의 위기다. 공동체 개념의 위기와 함께 오직 자기만 아는 무분별한 개인주의가 생겨났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더는 타인의 동반자가 아니다. 주변엔 오직 내가 맞서서 나 자신을 지켜 내야 할 경쟁자나 적뿐이다. 우리는 법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사법부는 이제 적으로 느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의 눈에 띄는 것이 기준점 없는 개인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소비주의,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그런 것들에 속한다. 이런 소비 행태는 대상을 소유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을 구매하자마자 바로 폐물로 만들어 버리면서도 끝없이 배를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폭식증 환자처럼 걷잡을 수 없느 구매 충동에 사로잡혀 이 물건 저 물건을 계속 집어 드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폰을 떠올려 보라. 신형이 예전 것보다 성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이런 광란의 욕망 대열에 참여하려면 아직 멀쩡한 핸드폰을 폐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은 분노를 동반한 항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이런 유동화(액체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을까? 있다. 우리가 유동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런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된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머지 시간을 더 잘 보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좋은 학급을 만들려면 단순히 사실이나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들을 비교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인류가 그렇게 열망하던 세 가지 소망 중 하나가 처음으로 실현된 시대에 살고 있다. 첫 번째 소망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야만 가능할 뿐 우리는 아직 스스로 공중으로 떠올라 두 팔을 저으며 날지 못한다. 두 번째 소망은 특정한 주문을 외거나 인형에 바늘을 찌름으로써 적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세 번째 소망은 신령스러운 정신이나 신비한 대상의 힘을 빌려 아무리 머리 떨어진 사람과도 대양과 산맥을 넘어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는 순식간에 리보르노에서 히말라야로, 이니스프리섬에서 팀북투로, 바그다드에서 미국의 포킵시로 이동해서 시간 손실 없이 수천 마일 떨어지니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다. 오늘날 테크놀리지는 인간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즉시 안겨 준다. 핸드폰 버튼만 누르면 당장 시드니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


중요한 비밀이라면 기적적인 물질의 형태건 정치적 기획의 형태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게 돼 있다. 그건 어설픈 음모이거나 알맹이 없는 비밀, 둘 중 하나다. 비밀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힘은 그것을 숨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있다고 우리가 믿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과 음모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갖고 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빅 브라더」 방송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깔깔거리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배우자가 심각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작은 바에서 별 의미 없는 연애질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과 비슷해 보인다.


언론의 과장은 말릴 수가 없다. 무언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분명한 어조로 확언하면 언론은 바로 그 사람이 마치 올림포스의 제우스처럼 〈벼락 치듯 일갈했다〉고 보도한다. 언론은 사람들이 단순히 말하는 것도 〈천둥 같은 일성을 토했다〉고 쓰고, 사람들이 단순히 어려움에 빠진 것도 〈태풍의 눈 속에 빨려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리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프로 정신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 인물을 찾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그것은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모 정당에도 당 대표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따라서 증오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범위가 넓고 많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또한 단 하나의 불꽃으로 거대한 군중을 껴안는다. 신문에서는 증오하는 적에게 폭탄을 던짐으로써 사지로 뛰어든 영웅의 죽음이 얼마나 황홀한지 묘사되곤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역사가 예부터 증오와 전쟁, 학살로 점철된 이유이다.


돈 보스코 신부는 죽음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우리는 잠을 자다가, 일을 하다가, 길을 가다가도 죽을 수 있고, 혈관 파열이나 카타르, 객혈, 열병, 상처, 지진, 번개 등으로 언제든 불시에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고, 현자는 평생을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김병욱 옮기. 2008. 여름언덕.


우리는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리고, 그건 다음엔 그 책들이 말하고자 한 것보다 우리가 그중에서 기억하는 내용을 근거로 일종의 가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책을 읽지도 않은 누군가가 책에 없는 구절이나 상황을 인용해도 우리는 그게 책에 있다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독서는 창의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돌을 던진 뒤 재빨리 손을 숨기고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숱하다. 그래 놓고는 또다시 지금까지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용서를 구하는 데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후회도 비슷하다. 옛날엔 자신의 악행을 후회하는 사람은 일단 어떻게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배상하려 애썼고, 그런 다음에는 평생을 회오˚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회ː오 (悔悟) 【명사】【~하다 → 타동사】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음. ┈┈• ∼의 눈물을 흘리다.

*회개.

회ː오 (會悟) 【명사】【~하다 → 타동사】무엇을 알아서 깨달음.


과거의 인간 사회는 어쨌든 우리가 믿고 기댈 중심이 있었다. 신, 인간성, 진보, 사랑, 자아, 이성, 자유 같은 이념이 우리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그와 함께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통이 와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젠 공동체를 묶어 주던 중심이 무너지면서 의지할 곳을 잃었다. 신은 죽고, 인간성에 대한 확신은 사라지고, 자아는 파편화되고, 비판적 이성 대신 도구적 이성이 판치고, 삶의 의미는 형해화하고, 공동체의 삶은 무너지고, 각자의 이익만 목청껏 외치는 이기적인 아우성만 남았다. 대신 돈이 나머지 모든 가치를 몰아내고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다 더해, 이제는 인공지능에 의한 파괴적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로 가고 싶을까? 에코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들여다보며 날카로운 조소와 풍자를 날린다.


책 소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2021.01.30. 주식회사 열린책들. 313쪽.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1932~2016)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소설가.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1956년 첫 번째 저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문제』를 펴냈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 대학에서 강의했다. 볼로냐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2007년까지 재직했다. 국제기호학회 사무총장 엮임. 저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독일 퀼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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