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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를 찾아서』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이다.


156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세계 최초 대학 교수 의사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란티우스는 인간의 뇌에서 작은 부분을 떼어냈다. 바다에 사는 해마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다. 율리우스는 뇌의 이 부분에 해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라틴어 이름은 ‘히포캄푸스’ ‘말-바다의 괴물’이라는 뜻이다. 뇌에서 나온 이 작은 부분이 인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몰랐다. 해마가 기억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1953년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953년 무렵 한 수술의 실패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400년 전에 발견한 뇌의 이 작은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었다. 외과 의사인 윌리엄 비처 스코빌은 뇌 수술을 계획하기 위해 27세의 환자 헨리 몰레이슨을 만난다. 헨리는 뇌전증(간질)이 있었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초에 걸친 짧은 발작을 겪었고, 한 시간에도 여러 번씩 겪을 때가 있었다.


의사 스코빌은 캐나다의 어떤 외과 의사가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해마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뇌의 양쪽에서 해마를 제거하면 한쪽만 제거할 때보다 두 배의 효과가 있을거라고 생각 했다. 헨리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지난 2~3년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그보다 심각하게는 짧은 순간 바로 기억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는 그 무엇도 회상할 수 없었다. 간호사들은 그에게 매번 화장실에 가는 길을 알려 주어야 했다.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 주어야 했다. 그 후 50년, 그는 순간순간을 살 수밖에 없었다.

심리학자인 수잰 코킨은 헨리의 마지막 40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구했다. 수잰 코킨은 의사와 연구자로 구성된 대규모 팀과 함께 헨리의 뇌를 하버드 연구자들이 MRI로 찍은 다음 아이스박스에 그의 뇌를 담아 2008년 12월 뇌 연구자 야코포 안네세와 함께 샌디에고로 보냈다. 뇌 관측 연구소의 안네세 박사는 죽은 사람들의 뇌를 아주 특수한 방식으로 보관하고 후대가 알츠하이머부터 일반적인 노화까지 온갖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장했다. 연구팀은 헨리의 뇌를 2401개 단층 촬영하고 포르말린과 기가바이트를 이용하여 보존했다.


기억을 연구하는 이유는 많다. 기억을 무언가 구체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기억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측정을 통해 기억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의 뇌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다 잘 이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학 분야에서 알츠하이머, 뇌전증, 우울증 같은 오늘날의 주요 수수께끼들을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기억은 구체적인 뇌 네트워크 안에서 일어나며, 뇌의 여러 부위가 동시에 함께 참여한다. 현대적인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의 도움을 받아 이를 눈으로 볼 수 있다. 기억은 여러 조각들을 짜 맞추어 의식의 단일한 물결을 만든다. 그리고 그 조각 하나하나는 뇌의 서로 다른 부위, 즉 이 조각들이 처음에 감각을 통해 인상을 남겼던 부위들에서 나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단일한 경험, 단 하나의 기억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뇌가 정교하게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격과 정체성은 기억이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기억을 할 수 없었던 헨리 몰레이슨도 자신을 경험할 수 있는 듯했다. 그는 비록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았다. 우리가 누구인가는 성질이나 반응 패턴 같은 요소들, 우리가 세상과 세상의 온갖 도전과 사건들에 어떻게 다가가는가가 결정한다.


사실이 아닌 걸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 자체는 그렇게 못 믿을 건 아닌지도 모른다. 단순히 빛깔과 감정을 햇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황당무계한 허위 기억도 많다. 허위 기억은 여러 가지 경로로 생겨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참전했던 사람들이 집단 치료에서 서로 남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허위 기억은 텔레비전에서 무엇을 보거나 집단 치료에 참여하거나 형제자매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다가 생겨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기억 하나하나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회상할 때마다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이 재구성은 구멍들을 그럴듯한 무엇으로 채워 넣는다.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뇌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영화 필름처럼 정확하게 저장할 필요가 없어지고, 따라서 효율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경험을 사람, 사물, 감각 경험, 사건으로 저장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은 해마가 꼭 붙잡아 주는 기억망으로 엮여 있다. 그럼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우리의 생각이 더 자유로워진다.


독일 에빙하우스는 기억은 우리 자신에 대해 특별한 의미가 없는한 점차로 희미해짐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그는 유리의 뇌 안에서 정확하게 무엇이 희미해지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기억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것 같다. 기억을 서로 간의 연결점들의 형태로 붙잡아 두는 뉴런들이 점차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정리 과정은 기억이 저장된 후에 상당히 빨리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망각이 없다면 기억의 창고는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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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낳고 자랐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에서 좋은 글귀를 블로그에 올린다. 유튜브에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youtube.com/@antv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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