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났다』

by 안서조

얼마 전에 조루즈 페렉의 『생각하기/분류하기』를 읽었다. 하지만,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책에는 조루즈 페렉의 글 10편이 실려있다. 페렉 사후에 그의 메모, 단편, 연설, 비평, 편지, 자화상, 신문 기사, 인터뷰, 서평, 라디오 방송을 위해 쓴 글을 모아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인 「나는 태어났다」는 1970년 9월 7일 프랑스 카로스 지방에서 쓴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36년 3월 7일에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연상되는 문장을 나열한다. 글 쓰기의 어려움을 엿 볼 수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무엇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무엇? 내가 태어났다. 누가? 내가? 언제? 1936년 3월 7일. 더 정확하게? 시간은 모르겠다. 호적등본을 볼 작정이다. (봐야만 한다) 일단 저녁 9시라고 하자. …’ ‘나는 언제나 고집스럽게 아버지를 앙드레라고 부른다.’ 까지 계속 이어진다.

페렉은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어머니는 페렉이 여섯 살 때 페렉만 스위스로 보내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시 만나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와의 이별, 게다가 무덤조차 없는 어머니의 죽음은 페렉의 삶은 물론 글쓰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페렉은 고모에게 입양되어 프랑스에서 살았다.


「가출의 장소들」은 11살 때 가출해서 공원 벤치에 잠들었다가 경찰서에 인계되어 고모부와 사촌 누나가 데리러 온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던 ‘가출’이 20년이 지나 갑자기 떠올랐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았지만, 점차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이 났다는 내용이다. 경찰서에서 경찰이 준 ‘샌드위치와 사발, 그가 물을 담아 마셨던 바닥이 회색 줄무늬로 얼룩지고 이가 나간, 크고 하얀 자기 사발’까지 떠올랐다.


페렉은 프랑스 국적이지만, 유대인에 대해 잠재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엘리스섬’ 프로젝트」에서 말한다. 내 입장에서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아주 깊숙하고, 몹시 혼란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나는 유대인이 의미하는 바를, 유대인이 의미하는 바가 내게 초래할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유대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명백한 사실, 말하자면 하찮은 사실이며, 어떤 흔적이지만, 나와는 정확하게도, 그리고 구체적으로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흔적이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표시도 아닐뿐더러 신앙, 종교, 관습, 문화, 민속, 역사, 운명, 언어와도 상관없다. 이는 오히려 부재, 질문, 문제 삼기, 동요, 불안감일 터이다. 불안한 확신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추상적이며, 묵직하고, 참을 수 없는 확신이 자리한다. 유대인으로 지목당한다는 불안감, 유대인 피해자라는 이유로, 삶을 우연과 유배에만 맡길 수밖에 없는 불안감 말이다.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인이다. 프랑스 이름을 갖고 있다. 조르주라는 이름은 프랑스식이고, 페렉이라는 성도 프랑스식에 가깝다. 차이는 아주 사소하다. 내 성의 첫 번째 ‘e’에 양음 부호가 없다. 내가 폴란드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모르데하이 페레츠라 불렸을 것이고, 그러면 누구든 내가 유대인임을 알았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폴란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미미하지만 집요하고, 은밀하며,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은 이런 식의 사소한 불일치에 집착한다. 내 안의 무엇인가와 관련해 어딘가 낯설다는 검정, 그것은 ‘다르다’는 감정인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의 가족’과 훨씬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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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낳고 자랐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에서 좋은 글귀를 블로그에 올린다. 유튜브에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youtube.com/@antv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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