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 여섯 편
이 책은 일본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 여섯 편을 엮었다. 제목만 보고 할아버지의 인생 정리 내용이라고 짐작해서 읽었다. 단편소설들은 메이지 유신 직후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무사도가 점차 사라지고 일본 전통 복식에서 서양 양복, 남자 머리 상투가 없어지고 하이칼라로 바뀌는 시점에 정부 조직과 관리들도 새로운 정책에 순응하려고 한다.
「동백사로 가는 길」 이야기 시작은 니혼바시 니시가시초 상점 에도야의 주인 고헤에와 시종 신타가 요코야마에 물건을 사러 가는 장면이다. 고헤에는 니시가시초에서 포목상을 한다. 종업원이 서른 명이 넘는 큰 상인이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미혼으로 독신이다. 신타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고아로 고헤에의 가게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랐다. 이제 열 살이 되었다. 무사의 아들이라는 출생 비밀을 모른 채 상점 심부름꾼으로 자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하코다테 증서」 흘러간 전투에서 적병에게 써주었던 목숨값 증서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하급 관리의 이야기다. 오코치 아쓰시는 무사 출신이다. 전투에 참여해서 살아남았지만, 무사로 할 일은 없어졌다. 메이지 유신으로 무사 계급은 없어지고 공무원이 된다. 어느 날 경시청 경부가 찾아온다. 과거 전장에서 만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천 원을 주기로 약속한 증서를 가지고 와서 돈을 달라고 한다. 월급이 백 원에 불과한 오코치로서는 천 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석류 고갯길의 복수」 호위무사인 시무라 긴고는 주인을 경호하며 이동하던 중 급습을 받아 주인을 잃는다. 그 후 13년 복수의 칼을 감추고 자객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찾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개인적인 복수는 위법이 되어버렸다. 인력거를 끌어 고생한 아내에게 보답하는 것이 마지막 소명이 되었다.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이 책의 대표 제목이다. 5대조 할아버지 이야기를 증조부에게 듣는다. 무가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무사들의 ‘정리해고’라는 고통스러운 임무를 묵묵히 완수하고, 끝내는 스스로도 ‘정리’하기 위해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죽을 곳을 찾아 떠나는 고로지의 이야기
「먼 포성」 초침과 분침, 시침이 만들어 내는 ‘서양 시간’에 몸도 마음도 따라가지 못하는 육군 장교의 이야기다.
1868년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 체제가 무너지고 메이지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은 변혁의 물결에 휩쓸린다. 갑자기 열린 개혁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무라이 계급은 단체로 갈 곳을 잃었다. 칼이 없는 사무라이는 세상에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아 나선다. 관리, 군인, 상인, 농민, 심지어 인력거꾼으로 사회 각가지 계층에 흡수된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어제까지와 전혀 다른 오늘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도 다르지 않다. 계엄 사태로 빚어진 정치권의 급변에 여가 야로 바뀌고 우왕좌왕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모르고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세상은 급변하고 초를 다투는 발전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일본 메이지 시대 사무라이 같은 정치인들이 나라를 결딴내고 있다. 격변의 시대에 우리 같은 서민들만 험한 꼴을 감수해야 한다.
책 중에서
천지 만물은 목화토금수의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일과 월을 보태 서양력의 일곱 요일에 맞추자는 생각은 적어도 영어나 프랑스어를 익히길 강요하는 것보다는 나을 게다. 하지만 화수목금토라는 배열은 영 납득 할 수 없었다. 목은 화를 만들고, 화는 토가 되며, 토가 금을 만들어 이윽고 금은 수가 된다. 만물은 이 오행의 흐름에 의해 생성되어 있으므로 목화토금수를 화수목금토로 배열을 바꾸면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무릇 사내의 뒷마무리란 그래야 하는 거야. 결코 도망치지도 되돌아가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마무리해야 해. 고로지 할아버지는 뒷마무리를 도맡아 했어. 번의 뒷마무리, 가문의 뒷마무리, 거기다 가장 고심했던 손자의 뒷마무리도 어찌어찌 이루고 마침내 더 바랄 것 없는 형태로 당신의 뒷마무리도 마쳤지.
사회를 지키는 군인도, 사회를 만들고 그 틀을 잡는 통치자도 무사무욕이어야 함이 당연한 도리다. 신을 대신해 그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가 제 몸과 목숨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무사도였다.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사상은 결코 서양의 이념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인류도 한결같이 진화한다는 생각은 큰 오해다. 시대가 흐를수록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근대 일본의 비극은 근대 일본인의 교만 그 자체였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지나간 시절을 품은 채 새 세상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우습고, 서글프고, 때때로 비장하다. 하지만 이들의 제자리걸음 혹은 몸부림 뒤에 웅크린 것을 그들이 고집스럽게 품고 있던 것은 옛 시절의 향수도 낡은 가치관도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뒤바뀌어 어디로 흘러가건 간직해야 할 오직 한 가지, 스스로에 대한 ‘긍지’였다. 올곧고 마음 따뜻한 일은 다소 느릴지언정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가로지르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인생은 결코 허름하거나 누추하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책 소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2013.11.29. (주)문학동네. 254쪽.
아사다 지로. 1951년 도쿄 출생. 1991년 피카레스크 소설 『당하고만 있을쏘냐』를 펴내면서 작품활동 시작. 1997년 『철도원』으로 나오키상 수상.
홍은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학과 같은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졸업. 일본에 거주하며 프랑스어와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