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래와 정낭』

by 안서조

이 책은 사라져가는 제주문화와 주거지, 생활 환경, 풍습 등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책이다. 제주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저자가 태어난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이다. 그곳에는 동서 방향으로 난 길의 북쪽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휘어진 유선형 올래가 있었다. 올래에는 정낭이 3개 있었는데, 정주석 없이 올랫담 위에 걸쳐서 있었다.


저자가 1996년 가을에 티베트의 동쪽 린즈 지역을 갔었는데, 그 지역은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곳에 두 군데서 나무로 된 정낭이 있는 민가를 발견하였다. 제주도에 있는 정낭과 갊은 티베트의 정낭을 보고 올래와 정낭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도는 1980년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이전 세대는 ‘제주 초집(초가집)’에서 살았고, 이후 세대는 개량 주택에 살았다. 제주도 올래는 ‘집’ 외부와 집안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울담(경계)’에 정남을 놓고 올래를 만들어 마당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런 구조는 제주만의 특별한 생활 방식과 연관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참고도서로 김인호 『한국 제주 역사문화 뿌리학』 등 많은 자료를 조사 인용했다.


제주의 마을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돌, 바람, 태풍, 바다, 장마, 눈, 비, 가뭄, 흉년 등 자연적인 것과 전염병, 유배인, 관인, 몽골, 왜구, 민란, 전쟁, 출륙금지령 같은 것이 있다.


제주인은 자연적 수난과 사회 역사적인 수난에 맞서 방어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무속신앙이 삶에 금기의 생활철학으로 되었다. 조선시대 중엽 200여 년간 지속되었던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제주는 육지와 단절되었다. 이 시기에 제주만의 돌, 바람, 수난의 신, 금기, 민속의 문화를 만들었다. 제주의 주거 문화는 이에 맞추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6년(태종16년) 5월 제주 목사 오식이 건의한 계본에에 제주에 군을 설치하던 초기에 한라산의 사면 모두 17곳에 현을 설치했다. 17현 중 15현은 귀일(하귀), 고내, 애월, 곽지, 귀덕, 명월, 신촌, 함덕, 김녕, 호촌(서귀포시 신례리, 하례리, 공천포), 홍로(서귀포시 동흥릴, 서흥리), 예래, 산방(사계), 차귀(용수)이다. 3곳은 기록에 없지만 수산((성산읍 수산리), 봉개동에서 영평동에 이르는 지역, 노형동에서 해안동에 이르는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을 추정된다.


제주 민가 공간은 올래, 마당, 안·밖거리, 통시, 우영밭 등으로 배치된다. 마을과 마을은 한질로 연결된다. 동네는 가름이라고 하며 ‘가르메’, ‘가스름’이라고도 불렀다. 방향에 따라서 동네 이름을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쪽 동네는 동카름, 서쪽은 서가름, 위(한라산)쪽 동네는 웃가름, 바다 쪽에 있는 마을은 알가름이라고 했다.


출입구 옆 다른 칸에는 쇠막(외양간)이 있다. 쇠막(마ᆞ갈막)이 있는데 모커리라고 한다. 모커리에는 축사와 다목적 창고 이문간(대문), 모커리방이 있는 구조도 있다.


부엌은 정지라고 한다. 정지는 물항(물항아리), 지들케(땔감), 솥덕(부뚜막), 살레(찬장) 등이 있다. 정지와 연결하여 고팡이 있다. 고팡은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이다.


제주의 가옥과 관련된 말로 마당에는 눌굽(소나 말 등 가축 먹일 건초를 쌓아놓는 곳), 장항굽(된장, 간장 항아리를 놓는 곳), 통시(변소, 돼지를 키우는 곳), 구들(방), 굴묵(방 난방 아궁이) 등이 있다.


올래의 기능은 집의 경계이다. 외부의 시선과 소리로부터 보호한다. 우마를 통제한다. 바람을 눅여준다. 우영팟을 보호한다. 책을 읽으면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책 소개

『제주도 올래와 정낭』 송일영 지음. 2021.12.08. 도서출판 각. 263쪽. 25,000원.

송일영. 건축사. 1962년 제주생. 올래와정낭건축사사무소 대표.



keyword